정의와 자비의 재판

베니스의 상인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법정 한가운데, 한 남자가 저울과 칼을 꺼내 듭니다. 저울에는 정확히 살 한 근의 무게를 잴 추가 올라가 있고,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갈아 번쩍입니다. 맞은편에는 셔츠를 풀어헤친 채 가슴을 드러낸 상인이 눈을 감고 서 있습니다. 재판관도, 공작도, 방청석을 가득 채운 베니스 시민들도 아무도 그를 막지 못합니다. 계약서에는 분명히 그렇게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돈을 갚지 못하면 몸에서 살 한 근을 베어 가져가도 좋다고, 채무자 스스로 서명한 문서였습니다.

이 장면에서 관객이 가장 먼저 묻게 되는 질문은 사실 간단합니다. 칼을 든 사람이 정말 옳은가, 아니면 칼을 맞아야 하는 사람이 옳은가. 그런데 셰익스피어는 이 질문에 쉬운 답을 주지 않습니다. 400년이 넘도록 학자들과 연출가들이 같은 장면을 놓고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아 온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 작품을 유쾌한 희극으로 읽고, 어떤 이는 인간이 만든 가장 정교한 편견의 초상화로 읽습니다. 같은 대본, 같은 대사인데도 말입니다.

빚, 우정, 그리고 계약서 한 장

이야기의 출발점은 단순합니다.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에게는 바사니오라는 절친한 친구가 있습니다. 바사니오는 벨몬트라는 부유한 영지의 상속녀 포셔에게 구혼하고 싶어 하지만 수중에 돈이 없습니다. 안토니오는 선뜻 돈을 빌려주려 하지만, 그의 재산은 모두 바다 위 상선에 실려 있어 당장 현금이 없습니다. 두 사람은 유대인 대금업자 샤일록을 찾아갑니다.

샤일록은 순순히 돈을 빌려주면서 뜻밖의 조건을 답니다. 이자 대신, 만약 정해진 날짜까지 돈을 갚지 못하면 안토니오의 몸에서 살 한 근을 잘라 가겠다는 것입니다. 얼핏 농담처럼 들리는 이 조항에 안토니오는 별 고민 없이 서명합니다. 자신의 배들이 곧 항구로 돌아올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배들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나는 난파했다는 소식이, 다른 하나는 좌초했다는 소식이 잇따라 들려옵니다. 상환일이 지나자 샤일록은 계약서를 손에 쥐고 법정으로 향합니다. 여기서 독자가 놓치기 쉬운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샤일록이 처음부터 살인을 계획한 악당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가 이토록 냉정하게 계약을 밀어붙이는 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습니다.

상인이 아니라 대금업자였던 이유

당시 베니스에는 실제로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고, 1516년부터는 도시 안의 특정 구역, 오늘날 ‘게토’라는 단어의 어원이 된 지역에 거주가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길드에 가입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상업 활동과 수공업에서 배제되었습니다. 반면 교회법은 그리스도인이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을 죄악시했기에, 도시의 자본 순환에는 이 틈을 메울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그 역할을 떠맡은 것이 유대인 대금업자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샤일록이 대금업자가 된 것은 그가 탐욕스러운 민족이라서가 아니라,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도록 사회가 문을 걸어 잠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가 빌려주는 바로 그 돈을 쓰면서, 안토니오를 비롯한 베니스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를 침 뱉고 발로 차는 대상으로 취급합니다. 샤일록은 법정에서 이렇게 항변합니다.

“당신은 제 옷에 침을 뱉었고, 제 개를 걷어차듯 저를 걷어찼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돈이 필요하다고요.”

셰익스피어가 이 극을 쓰던 1596년 무렵의 런던 관객들에게 이 대사는 단순한 연극적 설정 이상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불과 2년 전인 1594년, 엘리자베스 1세의 주치의였던 로데리고 로페즈가 여왕 독살 음모 혐의로 처형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포르투갈 출신의 개종 유대인이었던 그의 재판은 런던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고,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재판 내내 강조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셰익스피어에게 직접적인 영감을 주었는지는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립니다. 해럴드 블룸 같은 비평가는 두 사건의 연관성을 확신에 가깝게 주장하지만, 케임브리지의 찰스 에덜먼 같은 연구자는 로페즈의 유죄 판결이 그의 신앙과는 무관했다며 이 통설에 반박합니다. 다만 당시 잉글랜드 사회 전반에 반유대주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대부분의 학자가 동의하는 배경입니다. 잉글랜드에서는 이미 1290년 유대인 추방령이 내려진 뒤였고, 셰익스피어 생전에는 공식적으로 유대인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사회였습니다. 즉 런던의 관객 대부분은 실제 유대인을 만나본 적도 없이, 오직 무대 위의 스테레오타입만으로 유대인을 상상했던 셈입니다.

재판정의 두 얼굴

법정 장면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공작도 안토니오의 친구들도 온갖 말로 샤일록을 회유하려 합니다. 돈을 세 배로 갚겠다는 제안도 나옵니다. 그런데도 샤일록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계약의 이행, 즉 정의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연극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대사를 쏟아냅니다.

“유대인은 눈이 없습니까? 유대인은 손이, 오장육부가, 신체 기관이, 감각이, 감정이, 열정이 없습니까? 그리스도인과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무기에 다치고, 같은 병에 걸리고, 같은 약으로 낫고, 같은 겨울과 여름에 춥고 덥지 않습니까? 찌르면 피가 나지 않습니까? 간지럽히면 웃지 않습니까? 독을 먹이면 죽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우리는 복수하지 말아야 합니까?”

이 연설은 극이 쓰인 시대의 통념을 정면으로 거스릅니다. 유대인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그리던 당대의 무대 관습 위에, 셰익스피어는 관객이 부정하기 어려운 보편적 인간성의 언어를 얹어 놓은 것입니다. 이 장면 하나만 놓고 보면 샤일록은 피해자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극은 곧바로 그를 물러설 수 없는 자리로 몰아넣습니다. 상인의 가슴에 칼을 대려는 순간, 법률가로 변장한 포셔가 등장해 판결을 뒤집기 때문입니다.

포셔는 먼저 자비를 구하는 유명한 연설을 남깁니다. “자비는 강요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부드러운 비처럼 저절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샤일록이 이 호소를 거부하고 계약대로 살을 요구하자, 포셔는 곧바로 법률적 함정을 발동시킵니다. 계약서에는 ‘살 한 근’이라고만 적혀 있을 뿐 ‘피 한 방울’이라는 말은 없다는 것입니다. 피를 흘리지 않고 정확히 한 근의 살만 베어내라는,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이 성립합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외국인이 베니스 시민의 생명을 노렸다는 이유로 샤일록의 재산은 몰수 위기에 처하고, 결국 그는 재산의 절반을 안토니오에게 넘기고 나머지 절반은 딸 제시카와 그 남편에게 물려주는 조건으로, 게다가 기독교로 개종한다는 조건까지 받아들이고서야 목숨을 부지합니다.

자비를 말하는 자들의 자비 없음

바로 이 결말이 이 작품을 둘러싼 오랜 논쟁의 핵심입니다. 포셔는 자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듯 읊었지만, 정작 재판정에서 실제로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 상대를 완전히 파멸시키고, 그의 신앙까지 강제로 바꾸어 버리는 것이 이 극이 그리는 ‘승리’의 실체입니다. 안토니오를 비롯한 그리스도인들이 입으로는 사랑과 용서를 말하면서, 손으로는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상대를 짓밟는 이 간극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가 문제입니다.

한 가지 해석은 셰익스피어가 이 간극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려 했다는 것입니다. 즉 이 작품은 유대인을 조롱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그리스도인 사회의 위선을 고발하는 이중 구조를 갖고 있다는 읽기입니다. 다른 해석은 셰익스피어 자신이 당대의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으며, 샤일록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대사를 준 것은 극적 재미를 위한 장치였을 뿐, 극의 결말은 여전히 유대인의 패배와 그리스도인의 정당한 승리라는 당대의 틀 안에 있다는 주장입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지금까지도 합의된 결론이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샤일록이라는 인물이 셰익스피어의 다른 어떤 악역보다도 복잡한 내면과 그럴듯한 항변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같은 대사, 정반대의 무대

이 모호함이 실제 무대 위에서 얼마나 다른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20세기에 이 작품이 완전히 상반된 목적으로 공연된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기와 장소연출 의도샤일록의 형상화
1943년 나치 치하 빈반유대주의 선전탐욕스럽고 교활한 인물로 과장, 유대인 배우 대신 독일 배우가 우스꽝스러운 분장으로 연기
전후 서구 무대 (예: 1970년대 이후 다수 공연)인간성 회복편견의 희생자로서 존엄을 부여, “유대인은 눈이 없습니까” 연설을 극의 감정적 중심으로 배치

같은 대본을 가지고 한쪽은 증오를 선동하는 무기로, 다른 한쪽은 증오를 성찰하는 거울로 사용한 셈입니다. 이는 이 작품이 얼마나 위험할 정도로 열려 있는 텍스트인지를 보여줍니다. 텍스트 자체는 바뀌지 않았는데, 그것을 읽는 시선에 따라 전혀 다른 메시지가 만들어집니다.

딸의 도주, 그리고 남겨진 아버지

법정 장면의 그늘에 가려 자주 잊히는 인물이 있습니다. 샤일록의 딸 제시카입니다. 그녀는 극 중반, 아버지의 재물과 보석을 몰래 챙겨 그리스도인 청년 로렌조와 함께 야반도주합니다. 아버지가 딸의 배신을 알게 되는 장면에서 그는 이렇게 절규합니다. “내 딸! 오, 내 금화들! 내 딸이 그리스도인과 도망쳤다니, 그리고 내 그리스도인 금화도 가져갔다니!” 이 대사는 흔히 샤일록이 딸보다 돈을 더 아끼는 인물이라는 증거로 인용됩니다.

그러나 이 장면을 조금 다르게 읽을 여지도 있습니다. 그가 가진 전부가 재물뿐이었던 사람에게, 딸과 재물을 한꺼번에 잃는다는 것은 존재의 기반 전체가 무너지는 일이었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제시카가 아버지를 배신하면서까지 벗어나고 싶어 했던 것은 어쩌면 아버지 개인이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가 감내해야 했던 고립과 멸시 그 자체였는지도 모릅니다. 극은 이 질문에 답을 주지 않은 채, 딸을 벨몬트의 화려한 저택으로, 아버지를 텅 빈 법정에 홀로 남겨둔 채 지나가 버립니다.

희극이라는 이름의 무게

이 작품은 초판 표지에 ‘희극’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습니다. 실제로 극의 마지막 장은 벨몬트의 정원에서 연인들이 반지를 주고받으며 웃음과 화해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그 웃음 바로 몇 장면 앞에서, 한 인간이 신앙과 재산과 딸을 모두 빼앗긴 채 법정을 나섰다는 사실을 관객은 함께 기억하고 있습니다. 벨몬트의 달빛 아래 흐르는 음악과, 법정에 남은 침묵 사이의 낙차가 이 작품을 편안하게 웃어넘길 수 없게 만듭니다.

자주 묻는 질문

베니스의 상인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하나요?

살 한 근을 담보로 한 계약이라는 소재 자체는 셰익스피어 이전부터 유럽 여러 민담과 이탈리아 설화에 등장하던 이야기 유형이었습니다. 특정한 하나의 실제 사건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기보다, 오래전부터 전해지던 이야기 틀에 셰익스피어가 당대의 사회적 긴장을 불어넣어 새롭게 쓴 작품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샤일록은 로데리고 로페즈를 모델로 만들어진 인물인가요?

이 둘을 직접 연결하는 것은 오래된 통설이지만, 두 사람의 실제 성격이나 처지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적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로페즈 사건이 당시 사회의 반유대주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극작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은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샤일록이 로페즈를 모델로 삼아 그려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살 한 근을 베어내는 계약은 법적으로 유효했을까요?

극 중 세계관 안에서는 계약서에 서명한 이상 유효한 채무 담보로 다루어집니다. 다만 재판 과정에서 ‘피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별도로 추가되면서 사실상 이행이 불가능해집니다. 이는 실제 법 이론이라기보다 극적 반전을 위한 장치에 가깝습니다.

이 작품은 반유대주의적인 작품인가요, 아니면 그것을 비판하는 작품인가요?

학계의 견해는 지금도 나뉘어 있습니다. 샤일록에게 부여된 인간적인 항변과, 그럼에도 그가 결국 모든 것을 빼앗기고 개종을 강요당하는 결말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상반된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의 정답으로 단정하기보다, 이 작품이 그 시대의 편견과 그것을 향한 균열을 동시에 담고 있는 텍스트라고 보는 시각이 최근에는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작품이 공연되나요?

세계 유수의 극단들이 지금도 정기적으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있습니다. 다만 상연할 때마다 샤일록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 그의 강제 개종을 어떤 톤으로 처리할 것인지를 두고 연출가들이 매번 새로운 선택을 내려야 하는, 셰익스피어의 극 중에서도 유독 다루기 까다로운 작품으로 꼽힙니다.

이 글이 도움이 되었다면 주변 사람과 공유해 보세요.

함께 읽으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