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생명을 창조한 순간의 경이와 공포를 담은 장면

프랑켄슈타인은 왜 ‘최초의 SF소설’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을까?

1816년 여름, 스위스 제네바 호숫가의 한 별장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분명 6월이었는데도 하늘은 잿빛으로 뒤덮였고, 비는 며칠씩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몰랐지만, 그 전해에 지구 반대편 인도네시아에서 탐보라 화산이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고, 그 화산재가 지구 전체의 하늘을 가리며 여름을 겨울처럼 만들어버린 것이었습니다. 훗날 역사가들은 1816년을 ‘여름이 없던 해’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 우중충한 별장 ‘빌라 디오다티’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심상치 않은 인물들이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스타 시인이었던 바이런 경, 그의 주치의 존 폴리도리, 시인 퍼시 셸리, 그리고 그의 연인이었던 열여덟 살의 메리. 비 때문에 밖에 나갈 수 없었던 이들은 벽난로 앞에 모여 독일 유령 이야기책을 돌려 읽다가, 바이런의 제안으로 각자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씩 지어보자는 놀이를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며칠 만에 흥미를 잃었지만, 메리 셸리만은 달랐습니다. 그녀는 며칠 동안 마땅한 소재를 떠올리지 못해 괴로워하다가, 어느 밤 잠들기 직전 섬뜩한 환상을 봅니다. 창백한 얼굴의 학생이 자신이 조립한 존재 앞에 무릎을 꿇고, 그 끔찍한 형상이 눈을 뜨며 꿈틀거리는 장면이었습니다. 메리는 벌떡 일어나 이렇게 생각했다고 훗날 회고합니다. “내가 무섭다고 느낀 것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무섭다고 느끼겠지.” 그날 밤의 환상이 그대로 소설이 되었고, 1818년 익명으로 출간된 이 책은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인류 문학사에서 가장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바로 ‘최초의 진정한 과학소설’이라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세상에는 프랑켄슈타인보다 먼저 나온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청동 인간을 만드는 이야기가 있고, 유대 전설에는 진흙으로 빚은 골렘이 등장하며,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이미 100년 전에 상상 속의 나라들을 그려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메리 셸리의 이 소설에게만 ‘최초의 SF’라는 타이틀이 붙었을까요? 그 답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과학소설이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훨씬 더 흥미로운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왜 이 질문이 중요할까

‘최초의 SF소설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단순히 문학사 퀴즈의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닙니다.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려면 먼저 ‘과학소설과 판타지, 신화, 괴담은 대체 무엇이 다른가’를 정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정의를 세우는 순간, 우리는 인류가 ‘상상’을 대하는 방식이 근대에 들어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옛날이야기 속에서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대개 신의 뜻이거나 마법, 저주였습니다. 그런데 프랑켄슈타인에서 죽은 조직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마법 주문이 아니라 ‘과학적 실험’입니다. 이 차이는 사소해 보이지만 사실 인류의 사고방식 자체가 바뀌었다는 증거입니다. 사람들이 처음으로 “신이 아니라 인간이, 초자연이 아니라 과학의 힘으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상상하기 시작한 순간을 이 소설이 정확히 포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단순한 공포물이 아니라, 인류가 과학기술 시대로 들어서는 문턱에서 느낀 설렘과 공포를 동시에 담은 최초의 기록으로 평가받는 것입니다.

개구리 다리가 춤춘 그날

메리 셸리가 살던 시대는 과학이 마법처럼 보이던 시대였습니다. 그 중심에는 ‘갈바니즘’이라는 다소 생소한 단어가 있습니다.

이야기는 1780년대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해부학 교수 루이지 갈바니에서 시작합니다. 갈바니는 어느 날 죽은 개구리의 다리에 우연히 전기 스파크가 닿자, 이미 죽은 개구리의 근육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경련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는 이 현상을 생명체 안에 흐르는 ‘동물 전기’라고 이름 붙였고, 이 발견은 유럽 전역을 뒤흔들었습니다. 만약 전기가 근육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면, 어쩌면 전기야말로 생명 그 자체의 비밀이 아닐까 하는 상상이 퍼져나간 것입니다.

여기서 이야기는 더 섬뜩해집니다. 갈바니의 조카 조반니 알디니는 1803년 런던에서 대중을 모아놓고 충격적인 공개 실험을 벌입니다. 사형 집행 직후의 사형수 시신에 전극을 연결해 전류를 흘려보낸 것입니다. 실험 기록에 따르면 시신의 턱이 떨렸고, 한쪽 눈이 번쩍 뜨였으며, 주먹이 꽉 쥐어졌다고 합니다. 관객들은 경악했고, 심지어 죽은 사람이 정말로 되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메리 셸리가 태어나기 불과 몇 년 전, 실제로 런던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메리 셸리의 집안 배경도 이 상상력에 불을 지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윌리엄 고드윈은 급진적인 철학자였고,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 권리를 주장한 선구적 사상가였습니다. 게다가 훗날 진화론을 완성한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이라는 의사이자 과학자는 생명이 화학적, 전기적 과정을 통해 되살아날 수도 있다는 이론을 이미 책에 써놓은 상태였습니다. 실제로 프랑켄슈타인 초판 서문에는 메리 셸리가 별장에서 밤새 나눈 대화 중에 ‘에라스무스 다윈 박사’의 실험 이야기가 나왔다고 직접 언급되어 있습니다.

즉 메리 셸리는 허공에서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 아니라, 당대의 최신 과학 뉴스와 논쟁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만약 이 원리를 극한까지 밀어붙인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과학소설의 핵심 방법론입니다.

SF와 판타지를 가르는 결정적인 선

그렇다면 정확히 무엇이 프랑켄슈타인을 그 이전의 환상 문학과 구분 짓는 걸까요. 이 질문에 처음으로 명확한 답을 내놓은 사람은 영국의 SF작가이자 비평가인 브라이언 올디스입니다. 그는 1973년 『십억 년의 축제』라는 SF 문학사 책에서 프랑켄슈타인을 ‘최초의 진정한 과학소설’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의 주장을 이해하려면 세 가지 기준을 살펴봐야 합니다.

첫째는 ‘초자연이 아니라 과학이 원인’이라는 점입니다. 이전의 환상 문학, 예를 들어 고딕 소설의 대표작인 호레이스 월폴의 『오트란토 성』이나 앤 래드클리프의 작품들은 유령, 저주, 초자연적 존재가 두려움의 근원이었습니다. 반면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주문을 외우지 않습니다. 그는 해부학과 화학, 그리고 당시 최첨단이었던 전기 실험을 공부하고, 대학에서 습득한 지식을 활용해 실험실에서 생명체를 조립합니다. 소설 속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밤낮으로 자연의 가장 은밀한 구석을 추적했다.” 이는 마법사의 언어가 아니라 과학자의 언어입니다.

둘째는 ‘외삽(extrapolation)’이라는 개념입니다. SF는 현재 존재하는 과학 지식을 가져와 “만약 이것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를 상상하는 장르입니다. 메리 셸리는 갈바니와 알디니의 실제 실험이라는 ‘현재의 과학’을 가져와, 그것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면 결국 죽은 조직 전체를 되살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으로 확장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SF 작가들이 “지금의 기술 A가 미래에는 B까지 발전한다면?”이라고 묻는 방식의 원형입니다.

셋째는 ‘기술의 결과에 대한 윤리적 성찰’입니다. 이전의 환상 문학은 대개 괴물이나 초자연적 존재를 등장시켜 인간을 벌하거나 겁주는 데 그쳤습니다. 그러나 프랑켄슈타인은 다릅니다. 이 소설이 진짜로 묻는 질문은 “괴물은 무섭다”가 아니라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해서 생명을 창조했을 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입니다. 실제로 소설의 부제는 ‘모던 프로메테우스’입니다.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건네준 죄로 영원히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벌을 받은 신입니다. 메리 셸리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현대판 프로메테우스’라고 부름으로써, 과학의 힘을 훔쳐 생명을 창조한 인간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를 정면으로 다루고자 한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프랑켄슈타인’을 괴물의 이름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프랑켄슈타인은 그 괴물을 만든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이름입니다. 괴물에게는 애초에 이름이 없습니다. 소설 속에서 그는 그저 ‘피조물’, ‘악마’, ‘괴물’이라고만 불립니다. 이 사실 자체가 소설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창조자가 자신이 만든 존재에게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고 버렸다는 것, 그 무책임함이야말로 이 소설이 진짜로 두려워하는 대상입니다. 진짜 괴물은 피조물이 아니라, 자신이 창조한 존재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친 창조자라는 것이지요.

이 지점에서 소설의 줄거리를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스위스 제네바 출신의 청년으로, 잉골슈타트 대학에서 자연철학과 화학을 공부하다가 생명의 비밀을 파헤치겠다는 야심에 사로잡힙니다. 그는 시체 안치소와 도살장을 뒤져 신체 조직을 모으고, 마침내 거대한 인간 형상의 존재를 조립한 뒤 생명을 불어넣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눈을 뜬 피조물의 흉측한 모습을 본 순간, 빅터는 공포에 질려 그를 버리고 도망칩니다. 버림받은 피조물은 홀로 세상을 떠돌며 언어와 감정을 스스로 익히고, 인간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매번 그 흉측한 외모 때문에 거부당하고 공격당합니다. 결국 고독과 증오에 사무친 피조물은 창조자에게 복수를 결심하고, 빅터의 동생과 친구, 신부까지 살해합니다. 소설은 빅터가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쫓아 북극까지 갔다가 탈진해 죽고, 피조물 역시 창조자를 잃은 뒤 스스로 얼음 위에서 사라지겠다고 말하며 끝을 맺습니다.

이 줄거리를 다시 보면, 이 소설이 왜 그저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소설’로 불릴 자격이 있는지 더 분명해집니다. 공포의 근원이 저주받은 성이나 악령이 아니라, 대학 실험실과 화학 지식, 그리고 인간의 오만함이기 때문입니다.

프랑켄슈타인 이전과 이후

프랑켄슈타인 이전에도 상상력이 풍부한 이야기는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고대 그리스 작가 루키아노스가 쓴 『진실한 이야기』는 달나라 여행과 외계인 전쟁까지 등장하는, 어찌 보면 SF의 조상처럼 보이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애초에 작가 스스로 “이건 전부 거짓말이니 믿지 마시라”고 밝힌 풍자적 농담이었을 뿐, 과학적 사고실험이 아니었습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나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역시 가상의 사회를 통해 현실을 풍자하는 데 초점이 있었지, ‘과학기술이 어떻게 그런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가’를 따지지는 않았습니다.

반면 프랑켄슈타인 이후, 즉 19세기 후반부터 진짜 의미의 과학소설이 폭발적으로 등장합니다. 쥘 베른은 『해저 2만리』에서 잠수함 노틸러스호를, 『지구에서 달까지』에서 거대한 대포로 쏘아 올리는 우주선을 그려냈는데, 그는 실제 공학적 계산과 당대 과학지식을 토대로 이야기를 지었습니다. H. G. 웰스는 『타임머신』과 『투명인간』, 『우주전쟁』을 통해 시간여행과 진화론, 외계인 침공이라는 소재를 과학적 논리로 풀어냈습니다. 이들은 모두 메리 셸리가 닦아놓은 길, 즉 ‘초자연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실험으로 불가능을 그려내는 방식’을 물려받은 후계자들이었습니다.

현대로 오면 이 계보는 더욱 뚜렷해집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시리즈는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인간과 어떤 윤리적 갈등을 겪을까’를 다루고,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엑스 마키나’는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거나 배신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이 모든 이야기의 뿌리에는 “인간이 창조주의 자리에 서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라는 프랑켄슈타인의 질문이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영어권에서는 유전자 조작이나 인공지능처럼 논란이 되는 첨단 과학 뉴스가 나올 때마다 언론이 관행적으로 ‘프랑켄슈타인 식품(Frankenfood)’이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되어버린 AI’ 같은 표현을 사용합니다. 200년도 더 된 소설 속 은유가 지금도 실시간으로 쓰이고 있는 셈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은 무엇이 달랐나

아래 표는 프랑켄슈타인과 그 이전, 그리고 이후 장르의 핵심적인 차이를 정리한 것입니다.

구분대표 작품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핵심 질문
신화·전설그리스 신화(헤파이스토스), 유대 전설(골렘)신의 권능, 주문, 초자연신은 어떤 존재인가
고딕 소설『오트란토 성』, 『드라큘라』저주, 유령, 초자연적 존재인간은 죽음과 악을 어떻게 두려워하는가
풍자적 상상 문학『걸리버 여행기』, 『유토피아』가상의 설정(풍자 목적)우리 사회의 문제는 무엇인가
프랑켄슈타인(1818)『프랑켄슈타인』해부학·화학·전기 실험(갈바니즘)인간이 창조주가 되면 어떤 책임이 따르는가
근대 과학소설쥘 베른, H.G. 웰스 작품군공학적 상상, 과학적 외삽기술이 발전하면 사회와 인간은 어떻게 바뀌는가
현대 SF아시모프 로봇 시리즈, ‘블레이드 러너’인공지능, 로봇공학, 유전공학인간이 만든 존재가 인간을 뛰어넘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이 표를 보면 한 가지 흐름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시대가 흐를수록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이 신이나 마법에서 점점 인간의 과학기술로 옮겨간다는 것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은 바로 그 전환이 일어나는 정확한 분기점에 서 있는 작품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

메리 셸리가 이 소설을 썼을 때만 해도 ‘전기로 죽은 것을 되살린다’는 상상은 그야말로 공상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미 심장이 멈춘 사람에게 전기 충격을 가해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제세동기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유전자를 잘라내고 붙이는 크리스퍼 기술로 생명체의 설계도 자체를 바꿀 수 있고, 인공지능은 스스로 학습하며 인간의 예측을 뛰어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즉 프랑켄슈타인이 상상했던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순간’은 더 이상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현실의 질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이 던진 질문, “우리가 만든 존재에 대해 우리는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는 유전자 편집이나 인공지능을 둘러싼 오늘날의 논쟁에서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회사들이 최근 몇 년 사이 앞다투어 ‘책임감 있는 AI 개발’을 강조하는 것도, 결국 200년 전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저지른 실수, 즉 창조는 했지만 책임은 지지 않은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이 단순한 옛날 괴담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인용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핵심 정리

프랑켄슈타인이 최초의 SF소설로 불리는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초자연이 아니라 당대 실제 과학(갈바니즘, 전기 실험)을 근거로 이야기를 구성했습니다. 둘째, 현재의 과학 지식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외삽’이라는 사고 실험의 방법론을 처음으로 정교하게 사용했습니다. 셋째, 기술이 가져온 결과에 대한 윤리적 책임이라는, 이후 모든 SF의 핵심 주제를 최초로 본격적으로 다뤘습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결합되었기 때문에, 열여덟 살 메리 셸리가 벽난로 앞에서 지어낸 무서운 이야기는 단순한 괴담을 넘어 하나의 새로운 문학 장르의 출발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한 문장

“진짜 괴물은 흉측한 피조물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존재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은 창조자였다.”

FAQ

Q1.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름인가요? 아닙니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든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성입니다. 소설 속에서 괴물 자신에게는 이름이 주어지지 않으며, 그저 ‘피조물’이나 ‘악마’로 불립니다.

Q2. 메리 셸리는 몇 살에 이 소설을 썼나요? 1816년 아이디어를 처음 구상했을 때 그녀는 열여덟 살이었고, 1818년 출간 당시에는 스무 살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저자 이름 없이 익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Q3. 프랑켄슈타인이 왜 최초의 SF소설로 불리나요? 초자연이나 마법이 아니라 당시 실제로 존재했던 갈바니즘 전기 실험 등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만약 이 과학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면 어떻게 될까’라는 사고실험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기술의 결과에 대한 윤리적 성찰까지 담아, 이후 과학소설 장르의 핵심 요소를 최초로 갖췄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Q4. 최초의 SF소설 후보로 다른 작품은 없나요? 루키아노스의 『진실한 이야기』나 요하네스 케플러의 『솜니움』도 후보로 거론되지만, 이들은 풍자나 천문학적 사색에 가까워 과학적 사고실험이라는 조건을 온전히 충족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그래서 브라이언 올디스를 비롯한 많은 문학사가들이 프랑켄슈타인을 ‘진정한 의미의 최초 SF’로 꼽습니다.

Q5. 프랑켄슈타인의 부제인 ‘모던 프로메테우스’는 무슨 뜻인가요?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죄로 영원한 형벌을 받은 신입니다. 메리 셸리는 생명 창조라는 신의 영역을 침범한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에 빗대어, 인간이 과학의 힘으로 신의 권능을 넘보았을 때 치러야 할 대가를 암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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