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미술품 도난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미국 보스턴의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 2층, 네덜란드 전시실에는 지금도 텅 빈 금박 액자 몇 개가 벽에 걸려 있습니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원래 걸려 있던 그림은 사라진 지 이미 35년이 넘었습니다. 박물관 측은 그 자리를 다른 그림으로 채우지도, 액자를 떼어내지도 않았습니다. 관람객들은 매일 그 빈 액자 앞을 지나며 안내판에 적힌 짧은 문장을 읽습니다. 이 자리에 있던 작품은 도난당했으며,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이 빈 액자들이 걸려 있는 이유, 그리고 그 안에 있던 그림들이 여태 돌아오지 않은 이유를 따라가다 보면, 20세기 미국 범죄사에서 가장 기이한 사건 하나와 마주하게 됩니다. 총 가치 5억 달러, 우리 돈으로 7천억 원에 육박하는 그림 13점이 단 81분 만에 사라졌고,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체포되지 않았으며, 그림 한 점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FBI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그런데도 사건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새벽 1시 24분, 벨이 울렸다
1990년 3월 18일은 성 패트릭의 날이었습니다. 아일랜드계 이민자가 많은 보스턴에서는 전날 밤부터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들썩였습니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거리를 메운 이 밤, 박물관 경비실 벨이 울렸습니다. 경찰 제복을 입은 두 남자가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소란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근무 중이던 경비원 릭 애버스는 박물관의 원칙, 즉 야간에는 누구에게도 문을 열어주지 말라는 규정을 어기고 문을 열었습니다. 안으로 들어온 두 남자는 곧바로 애버스에게 수배 중인 사람과 닮았다며 신분증을 요구했고, 그가 경비 데스크에서 벗어난 순간 그를 붙잡아 수갑을 채웠습니다. 또 다른 경비원까지 지하실로 끌고 가 파이프에 테이프로 묶어놓은 뒤, 두 남자는 2층 네덜란드 전시실로 향했습니다.
이후 이들은 81분 동안 머무르며 액자 속 그림의 가장자리만 도려내 훔쳐 달아났습니다. 경보 장치는 울리지 않았습니다. 경비원 두 명을 제외하면 목격자도 없었습니다. 새벽 2시 45분경, 두 사람은 빨간색 차를 타고 유유히 박물관을 떠났습니다. 다음 날 아침 교대 근무자가 출근해서야 사건이 발각되었습니다.
박물관이 빈 액자를 그대로 둔 이유
왜 하필 그 자리에 다른 그림을 걸지 않았을까요. 답은 범죄가 아니라 한 여성의 유언장에 있습니다.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는 1924년 세상을 떠나며 특이한 조건을 남겼습니다. 자신이 평생 모은 컬렉션을 자신이 배치한 그대로 대중에게 영구히 전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 조건이 지켜지지 않으면 컬렉션과 부동산 전체를 매각해 하버드 대학교에 기부하도록 명시했습니다. 그림 한 점의 위치를 바꾸는 것조차 유언 위반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니 도둑맞은 그림 자리에 다른 작품을 옮겨 걸 수도 없었습니다. 박물관이 할 수 있는 일은 액자를 그대로 남겨두는 것뿐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빈 액자는 단순한 안타까움의 상징이 아니라, 한 사람의 유언이 만들어낸 법적 제약과 미제 사건이라는 우연이 겹쳐 탄생한 풍경입니다. 그리고 이 풍경은 사건이 해결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훔쳐간 것, 그리고 훔쳐가지 않은 것
도둑들이 그날 밤 가져간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페르메이르의 〈합주〉, 렘브란트의 유일한 바다 풍경화인 〈갈릴리 호수의 폭풍〉과 〈검은 옷을 입은 신사와 숙녀〉, 렘브란트의 자화상 에칭 한 점, 마네의 〈토르토니의 집에서〉, 드가의 스케치 다섯 점, 그리고 고대 중국 청동기 한 점과 나폴레옹 군기 꼭대기에 달렸던 독수리 장식 하나였습니다. 페르메이르의 〈합주〉는 현재까지 도난당한 그림 가운데 가장 값비싼 작품으로 꼽히며, 단독 가치만 2억 달러에 이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상한 점은 따로 있습니다. 같은 전시실에는 티치아노의 〈유로파의 납치〉가 걸려 있었습니다. 미술사학자들 사이에서 이 그림은 가드너 컬렉션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값진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런데 도둑들은 이 그림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상대적으로 무겁고 부피가 큰 고대 청동기와, 미술품이라기보다는 골동품에 가까운 군기 장식을 챙겼습니다. 이 선택은 도둑들이 미술 전문가가 아니었을 가능성을 짙게 시사합니다. 값을 매길 때 그림의 크기나 액자의 화려함을 기준으로 삼았을 수도 있고, 단순히 짧은 시간 안에 눈에 띄는 것을 닥치는 대로 챙겼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 도난 사건은 처음부터 치밀한 미술품 전문 절도라기보다는 즉흥적인 강도 행각에 가까웠다는 인상을 남깁니다.
이름은 나왔지만, 범인은 없다
사건 발생 23년이 지난 2013년, FBI는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FBI는 미국 중부와 보스턴에 기반을 둔 범죄 조직이 도난을 주도했으며 도둑의 신원도 파악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또한 훔친 미술품이 여러 경로를 거쳐 코네티컷과 필라델피아 지역으로 옮겨졌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이름과 이동 경로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수사선상에 오른 이름들은 이렇습니다. 보스턴의 조직폭력배 바비 도나티는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지만, 사건 발생 1년여 뒤 자택 앞에서 공격당한 채 캐딜락 트렁크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그와 가까웠던 또 다른 인물 바비 과란테는 2004년 복역 중 사망했는데, 그의 아내 엘렌은 훗날 남편이 코네티컷의 조직원 로버트 젠틸에게 그림 일부를 넘겼다고 FBI에 진술했습니다. 수사관들은 젠틸의 자택 지하실에서 경찰 신분증 재료와 제복, 무기와 탄약을 압수했지만, 젠틸은 끝까지 관련성을 부인했고 202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림의 행방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사건에서 언급된 인물은 모두 사망했습니다. 이름은 여럿 나왔지만 정작 재판에 넘겨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맙소사, 바비, 왜 모나리자를 훔치지 않았어?”
도난 미술품 시장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왜 풀리지 않는지를 설명할 때 종종 역설적인 문장 하나를 인용합니다. 도나티의 지인으로 알려진 한 인물이 도난 소식을 듣고 던졌다는 말입니다. “맙소사, 바비, 왜 모나리자를 훔치지 않았어?”
이 말은 농담처럼 들리지만 도난 미술품 거래의 핵심 딜레마를 정확히 짚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화일수록 은밀히 팔기가 오히려 더 어렵습니다. 어느 경매장에도, 어느 개인 수집가에게도 내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도난당한 미술품은 대부분 되팔리기보다 범죄 조직 내부에서 대출 담보나 형량 거래의 지렛대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키백과가 정리한 통계에 따르면 도난당한 미술품 가운데 실제로 회수되는 비율은 10퍼센트 정도에 그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림이 유명할수록, 그리고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그림은 시장에서 팔리는 상품이 아니라 아무도 손대지 못하는 짐이 됩니다. 가드너 박물관의 그림들이 바로 그런 처지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른 도난 사건들과 비교해보면
미술품 도난 사건은 가드너 박물관 사건 하나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유독 “세계 최대”로 불리는 이유는 다른 유명 사건들과 나란히 놓아보면 뚜렷해집니다.
| 사건 | 연도 | 작품 수 / 대표작 | 결말 |
|---|---|---|---|
| 가드너 박물관 도난 | 1990년 | 13점, 페르메이르·렘브란트 등 | 미회수, 체포자 없음 |
|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 도난 | 1911년 | 1점 | 1913년 회수, 범인 체포 |
| 뭉크 미술관 〈절규〉 도난 | 1994년, 2004년 | 1~2점 | 각각 수개월~2년 내 회수, 범인 체포 |
가드너 사건이 다른 사건들과 갈라지는 지점은 명확합니다. 모나리자도, 뭉크의 〈절규〉도 결국 그림은 돌아왔고 범인도 잡혔습니다. 반면 가드너 박물관에서 사라진 13점은 단 한 점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도난당한 총액이 다른 어떤 개인 재산 절도 사건보다 크다는 점, 그리고 30년이 넘도록 그림도 범인도 찾지 못했다는 두 조건이 함께 충족되면서 이 사건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미술품 도난 사건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유효한 현상금
박물관은 처음 100만 달러였던 현상금을 500만 달러로 올렸고, 2017년에는 정보 제공자에게 지급할 현상금을 1천만 달러까지 인상했습니다. 이 금액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절도죄 자체는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도난품을 은닉하거나 소지한 행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처벌이 가능하다는 점도 박물관 측이 수사 협조를 계속 독려하는 이유입니다. 2021년에는 넷플릭스가 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공개하며 대중의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지만, 이후에도 결정적인 진전은 없었습니다.
네덜란드 전시실의 빈 액자들은 오늘도 그 자리에 걸려 있습니다. 누군가 언젠가 그림의 행방을 털어놓기 전까지는, 그리고 이사벨라 가드너의 유언이 그 자리를 지키는 한, 이 액자들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비어 있을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도난당한 그림의 현재 가치는 얼마나 되나요?
1990년 당시에는 약 2억 달러 안팎으로 추산되었지만, 미술 시장 전반의 가격 상승을 반영해 현재는 5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이는 공식 감정가가 아니라 전문가들의 추정치라는 점을 밝혀둘 필요가 있습니다.
Q2. 범인이 밝혀졌는데 왜 아직 체포되지 않았나요?
FBI가 2013년 발표한 내용은 범죄 조직의 연루 가능성과 대략적인 이동 경로에 관한 것이었지, 법정에서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확정적 증거는 아니었습니다. 핵심 인물로 거론된 사람들이 이미 사망했거나 끝까지 진술을 거부하면서 수사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Q3. 도난당한 그림들이 아직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나요?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캔버스에서 액자만 도려내는 방식으로 훔쳐 갔기 때문에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았을 경우 그림 자체가 훼손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다만 수사 당국은 그림이 여전히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Q4. 왜 박물관은 다른 작품으로 빈 자리를 채우지 않나요?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의 유언 때문입니다. 그녀는 컬렉션을 자신이 배치한 그대로 영구 보존하라는 조건을 남겼고, 이를 어길 경우 컬렉션 전체를 매각해 하버드 대학교에 기부하도록 명시했습니다. 이 조건 때문에 박물관은 빈 액자를 그대로 둘 수밖에 없습니다.
Q5. 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나 영상물이 있나요?
2021년 넷플릭스가 이 사건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공개했습니다. 사건의 전말과 수사 과정, 주요 용의자들의 이야기를 상세히 다루고 있어 관련 배경을 이해하는 데 참고할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