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의 가장 큰 수수께끼

라스 메니나스는 왜 미술사 최고의 수수께끼일까?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12번 방에 들어서면, 한 점의 그림만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 나타납니다. 벽 하나를 통째로 차지한 그림 앞에 관람객들이 멈춰 섭니다. 그림 속에는 다섯 살 공주와 시녀들, 난쟁이 두 명과 개 한 마리, 그리고 커다란 캔버스 뒤에 서서 붓을 든 화가 자신이 그려져 있습니다. 얼핏 보면 궁정의 어느 오후를 담은 평범한 단체 초상화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림 뒷벽, 문 옆에 걸린 작은 거울을 한참 들여다보던 관람객들의 표정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거울 속에는 두 사람의 얼굴이 흐릿하게 떠 있습니다. 왕과 왕비입니다. 화가가 그리고 있는 커다란 캔버스는 관람객을 향해 등을 돌리고 있어서, 그 위에 무엇이 그려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볼 수 없습니다. 화가의 시선은 캔버스가 아니라 이쪽, 그러니까 지금 이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 쪽을 향해 있습니다.

여기서 질문 하나가 생깁니다. 벨라스케스는 지금 누구를 그리고 있을까요. 왕과 왕비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그림, <라스 메니나스> 자체일까요. 350년이 넘도록 이 질문에 완전히 합의된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철학자와 미술사학자, 인지과학자까지 뛰어들어 이 작은 거울 하나를 두고 논쟁을 벌여 왔습니다.

1656년, 알카사르 궁전의 작업실

이 그림이 그려진 곳은 마드리드 왕궁 알카사르 안에 있던 벨라스케스의 작업실입니다. 원래 이 방은 어린 왕자 발타사르 카를로스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었는데, 그가 열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궁정화가의 아틀리에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벨라스케스는 이미 스페인 왕 펠리페 4세의 신임을 받는 수석 화가였고, 왕의 침실 담당관이라는 궁정 내 실무 직책까지 겸하고 있었습니다.

그림의 원래 제목은 <라스 메니나스>가 아니라 <라 파밀리아>, 즉 ‘가족’이었습니다. 왕실 소장품 목록에는 오랫동안 이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었고, 지금 우리가 부르는 이름은 1843년 프라도 미술관에서 붙인 것입니다. ‘메니나스’는 포르투갈어에서 온 말로, 어린 왕녀를 곁에서 돌보는 시녀들을 가리킵니다.

캔버스에 담긴 인물은 모두 열 명이 넘습니다. 화면 중앙에는 다섯 살 난 왕녀 마르가리타 테레사가 서 있고, 양옆으로 시녀 도냐 마리아 아우구스티나 사르미엔토와 도냐 이사벨 데 벨라스코가 시중을 들고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난쟁이 마리 바르볼라와 니콜라시토 페르투사토, 그리고 늘어져 잠든 개 한 마리가 자리합니다. 뒤쪽 어둠 속에는 시녀장과 경호원으로 보이는 인물이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고, 열린 문 앞 계단에는 왕비의 시종 호세 니에토가 실루엣으로 서 있습니다. 이 인물들의 이름은 벨라스케스가 세상을 떠난 뒤인 1724년, 스페인 화가 안토니오 팔로미노가 당대 궁정 인사들의 증언을 모아 남긴 기록 덕분에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거울 속 두 얼굴

논쟁의 출발점은 언제나 그 작은 거울입니다. 뒷벽 중앙, 문 바로 왼쪽에 걸린 사각형 거울 안에는 콧수염을 기른 중년 남성과 화려하게 틀어 올린 머리를 한 여성의 상반신이 어렴풋이 비칩니다. 다른 벨라스케스 초상화들과 비교해 보면 이 두 얼굴이 펠리페 4세와 왕비 마리아나임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널리 받아들여진 해석은 이렇습니다. 왕과 왕비가 초상화를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던 그 순간, 어린 공주가 시녀들을 데리고 방에 들어옵니다. 화가는 왕과 왕비를 그리다 말고 이쪽을 돌아보고, 우리는 그 찰나를 목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울에 비친 왕과 왕비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실제로 서 있는 셈이 됩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1966년 저서 <말과 사물>의 첫 장을 통째로 이 그림에 할애하면서, 바로 이 지점에서 고전주의 시대 재현의 근본적인 역설을 읽어냈습니다. 그림을 보는 사람, 그림에 그려지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자리가 한 점에서 겹쳐 버린다는 것입니다.

기하학이 던진 반론

이 해석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980년, 시카고 대학의 미술사학자 조엘 스나이더가 내놓은 분석 때문이었습니다. 스나이더는 그림 속 바닥 타일과 천장 대들보가 만드는 소실점을 하나하나 추적했습니다. 그 결과 그가 도달한 결론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화면의 원근법 구조상, 거울에 정확히 반사될 수 있는 위치에는 왕과 왕비가 서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이미 벨라스케스의 커다란 캔버스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나이더의 계산이 맞다면 거울에 비친 것은 방 안에 실제로 서 있는 왕과 왕비가 아니라, 벨라스케스가 지금 그리고 있는 캔버스 위의 그림, 즉 초상화 속 초상화일 가능성이 커집니다. 왕과 왕비는 방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완성되어 가는 그림으로만 존재한다는 뜻이 됩니다. 스나이더는 이 장면을 왕실 초상 촬영이 막 끝나가는 순간으로 해석했습니다. 옆에 선 시녀가 무릎을 살짝 굽혀 인사를 시작하고, 니에토가 문을 열어 왕과 왕비가 곧 자리를 뜰 채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철학자의 역설

같은 해, 버클리 대학의 언어철학자 존 설도 독자적인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설은 캔버스의 실제 치수에 주목했습니다. 벨라스케스가 그리고 있는 캔버스는 세로 약 3미터, 가로 약 2.4미터에 달하는 대형 캔버스로 그려져 있는데, 이는 지금 우리 눈앞에 걸린 <라스 메니나스> 실물과 거의 같은 크기입니다. 왕실 기록을 뒤져도 벨라스케스가 왕과 왕비를 나란히 그린 다른 초상화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설은 여기서 대담한 결론에 이릅니다. 화가가 캔버스에 그리고 있는 것은 왕과 왕비의 초상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그림 자체라는 것입니다.

이 해석을 따라가면 그림은 스스로를 그리는 그림이 됩니다. 화가가 캔버스 앞에 서서 바라보고 있는 대상은 왕과 왕비가 아니라 관람객, 즉 지금 그림 앞에 서 있는 우리 자신이 됩니다. 거울에 비친 왕과 왕비의 얼굴은 우리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실제로 서 있는 인물들의 반사상이고, 우리는 그 순간 왕과 왕비가 서 있던 자리에 대신 서서 그림을 보고 있는 셈이 됩니다.

두 해석 가운데 어느 쪽도 완전히 논파되지 않았습니다. 스나이더의 기하학적 계산에 다시 반론을 제기한 학자들도 있었고, 설의 해석이 캔버스 뒷면의 정확한 각도까지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미술사학자 스베틀라나 앨퍼스는 또 다른 제3의 독법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300년 넘게 이어진 이 논쟁에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입니다. 벨라스케스가 캔버스 뒷면을 관람객 쪽으로 돌려놓은 그 선택 자체가, 그림의 진짜 주제를 영원히 캔버스 뒤에 숨겨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초상화가 아니라 초상화들

이 논쟁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라스 메니나스>는 화면 안에 이미 여러 겹의 초상화를 품고 있습니다. 뒷벽 위쪽으로는 그림 두 점이 어둡게 걸려 있는데, 최근 연구를 통해 루벤스의 공방에서 나온 신화 그림을 옮겨 그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벨라스케스는 실제로 존재하는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배경 삼아, 자신이 지금 그리고 있는 캔버스와 대비시킨 셈입니다.

문가에 선 니에토의 존재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는 왕비의 시종이자 왕비의 친척이었던 인물로, 그림 속에서 유일하게 방을 드나들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작 중인 사람입니다. 정지된 순간을 그린 그림 안에서 그의 실루엣만이 움직임의 방향을 암시합니다. 그가 문을 열고 있는지, 닫고 있는지조차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립니다.

나중에 그려진 십자가

벨라스케스의 가슴에는 붉은 십자가 하나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산티아고 기사단의 표식입니다. 이 십자가에는 흥미로운 사연이 전해집니다. 벨라스케스가 그림을 완성한 시점에는 아직 이 기사단원 자격을 얻지 못한 상태였고, 십자가는 그가 실제로 서임된 1659년, 그러니까 그림을 완성한 지 3년이 지난 뒤에 덧그려졌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설명입니다. 누가 이 붓질을 더했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지만, 왕이 직접 붓을 들어 그려 넣었다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옵니다. 사실로 단정할 근거는 부족하지만, 이 일화는 궁정화가라는 신분이 당시 얼마나 불안정했는지, 그리고 벨라스케스가 평생 얼마나 절실하게 신분 상승을 원했는지를 짐작하게 해 줍니다. 화가라는 직업이 장인의 손기술로 취급받던 시대에, 그는 그림 안에 자신을 귀족처럼 그려 넣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지위를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불길 속에서 살아남다

이 그림에는 또 하나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1734년 크리스마스이브, 알카사르 궁전에 큰불이 났습니다. 나흘 동안 이어진 화재로 궁전 대부분이 무너졌고, 벨라스케스의 다른 작품들을 포함해 수많은 미술품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라스 메니나스>는 가까스로 화마를 피했지만 무사하지는 못했습니다. 왕녀의 왼쪽 뺨 부분이 손상되어, 훗날 궁정화가 후안 가르시아 데 미란다가 다시 그려 넣어야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마르가리타 공주의 얼굴 한쪽은 엄밀히 말하면 벨라스케스가 아니라 미란다의 붓끝에서 나온 것입니다.

캔버스 뒤에서

프라도 12번 방을 나서기 전, 다시 한번 그림 앞에 서 보면 처음과는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화가의 시선, 거울 속 흐릿한 두 얼굴, 그리고 여전히 등을 돌린 채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는 캔버스입니다. 벨라스케스는 자신이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끝내 밝히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이 그림이 300년 넘게 미술관 벽을 지키며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아 온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답을 주는 대신, 보는 사람 각자를 그림 속 빈자리에 세워 놓은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라스 메니나스>는 지금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 12번 방에 상설 전시되어 있습니다. 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는 작품으로 꼽힙니다.

그림 속 왕과 왕비는 실제로 어디에 있는 것인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학계에서 완전히 합의되지 않았습니다. 방 안에 실제로 서서 화가와 마주 보고 있다는 해석과, 화가가 그리고 있는 캔버스 위에만 존재한다는 해석이 지금도 함께 제시되고 있습니다.

벨라스케스는 왜 자기 자신을 그림에 그려 넣었나요?

당시 화가는 사회적으로 장인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습니다. 벨라스케스는 자신을 궁정의 일원으로, 그것도 붓을 든 예술가로 화면 안에 등장시킴으로써 회화라는 작업의 격을 귀족적 지위에 견주려 했다는 해석이 일반적입니다.

그림 제목에 있는 ‘메니나스’는 무슨 뜻인가요?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한 말로, 왕실 자녀를 곁에서 시중드는 어린 시녀들을 가리킵니다. 그림이 완성된 당시에는 <라 파밀리아>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지금의 제목은 19세기 프라도 미술관에서 붙인 것입니다.

그림 속 두 난쟁이는 실존 인물이었나요?

네, 마리 바르볼라와 니콜라시토 페르투사토는 실제로 스페인 궁정에 소속되어 있던 인물들로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당시 유럽 궁정에서는 난쟁이나 광대를 곁에 두는 관습이 있었으며, 이들 역시 왕실 초상화에 종종 함께 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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