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들과의 깊은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

행복한 사람들은 무엇이 다를까? — 심리학이 75년간 추적해서 밝혀낸 진짜 답

복권에 당첨된 사람과 하반신 마비가 된 사람, 1년 뒤 누가 더 행복했을까?

1978년, 미국의 심리학자 필립 브릭먼은 좀 이상한 실험을 하나 진행합니다. 그는 두 그룹의 사람을 찾아 나섭니다. 한 그룹은 복권에 당첨돼 인생이 뒤바뀐 사람들. 하루아침에 수억 원을 손에 쥔, 세상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 그룹은 정반대였습니다. 교통사고나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들.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순간을 지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브릭먼은 이 두 그룹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사고 직후에는 예상대로였습니다. 복권 당첨자들은 하늘을 날듯 기뻐했고, 사고를 당한 사람들은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1년 뒤에 일어났습니다. 두 그룹의 행복도를 다시 측정했더니, 차이가 거의 사라져 있었던 겁니다. 복권 당첨자들의 행복은 원래 수준으로 가라앉았고, 하반신 마비 환자들의 행복은 다시 회복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사고를 당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소소한 일상, 예를 들어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에서 복권 당첨자보다 더 큰 행복을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이 실험은 심리학계에 충격을 던졌습니다. 우리는 보통 ‘조건이 좋아지면 행복해진다’고 믿습니다. 돈이 많으면, 좋은 집에 살면, 좋은 학벌이 있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연구는 그 믿음을 정면으로 뒤흔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행복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그리고 정말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사실이라면, 그 사람들은 대체 무엇이 다른 걸까요?

지금부터 이 질문에 대해, 지난 반세기 동안 심리학자들이 실제로 사람들을 추적하고 관찰하며 밝혀낸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왜 이 질문이 중요한가

‘행복’이라는 단어는 너무 흔해서 오히려 아무도 진지하게 파고들지 않는 주제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건 인간이 살면서 던지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돈을 벌고, 공부를 하고, 인간관계를 맺고, 취미를 갖는 것도 결국 따지고 보면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하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정작 ‘무엇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가’에 대해서는 대부분 막연한 직감에 의존해서 살아갑니다.

문제는 이 직감이 자주 틀린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에게 “무엇이 당신을 더 행복하게 만들 것 같습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 연봉 인상, 승진, 더 큰 집, 더 좋은 차를 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것들을 손에 넣은 사람들을 추적해보면, 행복도가 크게 오르지 않거나 오르더라도 금방 원래 수준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 반복적으로 확인됩니다. 우리는 행복에 대해 잘못된 지도를 들고 길을 찾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지도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행복 연구는 언제, 왜 시작됐을까 — 심리학의 오래된 편식

사실 심리학이라는 학문 자체는 오랫동안 ‘행복’보다는 ‘불행’을 연구하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을 썼습니다. 우울증, 불안, 트라우마, 정신질환. 20세기 심리학의 주된 관심사는 ‘고장 난 마음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였습니다. 이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전쟁을 두 번 겪은 인류에게는 당장 눈앞의 고통을 치료하는 게 급했으니까요.

이 흐름이 바뀐 건 1998년입니다. 미국심리학회 회장으로 선출된 마틴 셀리그만이라는 학자가 취임 연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지난 50년 동안 마이너스를 0으로 만드는 법만 연구했습니다. 이제는 0을 플러스로 만드는 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이 한마디가 ‘긍정심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병들지 않게 하는 것을 넘어, 사람들이 실제로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과학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이 흐름과는 별개로, 하버드 대학교에서는 이미 1938년부터 조용히 진행되던 연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268명의 하버드 대학생을 선발해서, 그들이 죽을 때까지 평생을 추적하겠다는 무모할 정도로 야심 찬 계획이었습니다. 이 연구는 훗날 대상자를 넓혀 총 700명이 넘는 사람들을 3대에 걸쳐 추적하는 ‘하버드 성인발달연구’로 발전합니다. 지금까지도 진행 중인, 인류 역사상 가장 긴 행복 연구입니다. 이 연구가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는 조금 뒤에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 유전, 환경, 그리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40%

행복 연구자들이 던진 첫 번째 질문은 이거였습니다. “행복도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타고나는 것인가, 환경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하기 나름인가?”

이 질문에 대해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심리학자 소냐 류보머스키는 수십 년간 쌍둥이 연구, 종단 연구, 개입 실험을 종합해서 하나의 도식을 제시했습니다. 흔히 ‘행복의 파이 차트’라고 불리는 이 도식에 따르면, 사람들 사이의 행복도 차이는 대략 다음과 같이 나뉩니다.

첫째, 유전적 설정값(약 50%). 일란성 쌍둥이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어도 행복도가 놀랍도록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태어날 때부터 어느 정도 ‘기본 행복 온도’가 정해져 있다는 뜻입니다. 원래 낙천적인 기질을 타고난 사람도 있고, 원래 걱정이 많은 기질을 타고난 사람도 있습니다.

둘째, 삶의 환경과 조건(약 10%). 여기에는 수입, 결혼 여부, 사는 지역, 건강 상태, 외모 같은 것들이 포함됩니다. 우리가 보통 행복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착각하는 요소들이지만, 실제 영향력은 놀랍도록 작습니다. 이유는 앞서 본 복권 당첨자 실험에서 확인한 그대로입니다. 사람은 새로운 환경에 아주 빠르게 적응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쾌락의 트레드밀(hedonic treadmill)’이라고 부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 생겨도 러닝머신 위를 달리듯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셋째, 의도적 활동(약 40%). 바로 이 부분이 핵심입니다. 우리가 매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선택하고, 어디에 시간을 쓰는가. 감사를 표현하는가, 타인과 관계를 맺는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가. 이 40%는 유전자처럼 타고나는 것도 아니고, 환경처럼 우리 통제 밖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즉 행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대부분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무엇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매일 반복하는가’에서 갈린다는 것이 지난 수십 년 연구의 결론입니다.

하버드가 85년을 지켜본 결론 — 관계가 전부였다

다시 하버드 성인발달연구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 연구를 오랫동안 이끌었던 정신과 의사 로버트 월딩어는 2015년 테드 강연에서 이 연구의 결론을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좋은 관계가 우리를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든다. 그게 전부다.”

구체적으로 어떤 발견들이 있었을까요. 연구진은 참가자들의 재산, 사회적 지위, 지능, 직업적 성취를 모두 추적했습니다. 그런데 50세 시점의 콜레스테롤 수치보다 50세 시점의 ‘인간관계 만족도’가 이후 건강과 장수를 훨씬 더 정확하게 예측했습니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은 중년기에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더 빨리 나빠졌고, 뇌 기능도 더 빨리 저하됐습니다. 반면 가까운 사람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 사람들은 노년에도 기억력과 활력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말하는 ‘좋은 관계’가 친구가 얼마나 많은지,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와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는 겁니다. 중요한 건 관계의 ‘질’이었습니다. 갈등이 잦은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보다, 갈등이 있더라도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다고 느끼는 관계를 맺은 사람이 훨씬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나이 들었습니다.

사례로 보는 행복 — 덴마크, 부탄, 그리고 한 심리학 실험

이론만으로는 부족하니, 실제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덴마크의 역설. UN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덴마크는 늘 상위권에 오릅니다. 흥미로운 건 덴마크의 날씨가 1년 중 대부분 흐리고 춥다는 사실입니다. 덴마크 사람들 스스로도 이 역설을 인정합니다. 연구자들이 찾아낸 이유 중 하나는 ‘기대치 관리’입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대체로 삶에 대한 기대치가 크지 않고, 그만큼 실망할 일도 적습니다. 여기에 촘촘한 사회 복지 시스템이 ‘혹시 잘못되면 어쩌지’라는 불안을 줄여주고, ‘휘게(hygge)’라 불리는 문화, 즉 소박하고 아늑한 일상의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더해집니다.

부탄의 실험. 히말라야의 작은 나라 부탄은 1970년대부터 국민총생산(GNP) 대신 ‘국민총행복(GNH)’을 국가 정책의 지표로 삼았습니다. 경제 성장보다 국민의 심리적 웰빙, 공동체 활력, 문화 보존을 우선순위에 둔 겁니다. 부탄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주장에는 논란도 있지만, 이 실험이 던진 질문만큼은 의미가 큽니다. ‘국가의 성공을 GDP가 아니라 국민의 행복으로 측정하면 어떨까’라는 질문이 이후 여러 나라의 정책에 실제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감사 일기 실험. 심리학자 로버트 에먼스는 사람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게는 매주 감사한 일 다섯 가지를, 다른 그룹에게는 짜증 났던 일을, 나머지 그룹에게는 그냥 있었던 일을 적게 했습니다. 몇 주 뒤, 감사한 일을 적은 그룹은 다른 그룹보다 삶의 만족도가 뚜렷하게 높아졌고, 운동도 더 많이 하고, 신체적 증상도 더 적게 호소했습니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난 게 아니라 그저 ‘이미 있던 좋은 일을 알아차리는 습관’만 들였을 뿐인데도 이런 변화가 나타난 겁니다.

행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무엇이 다를까

구분행복도가 높은 사람들의 경향행복도가 낮은 사람들의 경향
비교 대상과거의 자신과 비교타인, 특히 SNS 속 타인과 비교
관심의 방향지금 가진 것에 주의를 둠갖지 못한 것에 주의를 둠
인간관계소수라도 깊은 관계를 유지관계의 폭은 넓으나 깊이가 얕음
목표 설정스스로 의미를 두는 목표 추구사회적 기준(연봉, 지위)에 맞춘 목표 추구
경험 소비물건보다 경험에 지출경험보다 물건에 지출
시간 감각지금 이 순간에 집중(음미)과거 후회 또는 미래 불안에 몰두
어려움 대응어려움을 성장의 계기로 재해석어려움을 고정된 실패로 받아들임

이 표에서 가장 눈여겨볼 항목은 ‘비교 대상’입니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인간의 행복이 절대적인 조건보다 ‘상대적 비교’에 훨씬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확인했습니다. 유명한 예로, 연봉이 5천만 원인데 동료들이 4천만 원을 받는 사람이, 연봉이 6천만 원인데 동료들이 8천만 원을 받는 사람보다 더 만족도가 높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절대적인 금액은 후자가 더 많은데도 말입니다. 결국 무엇과 비교하느냐가 행복을 결정짓는 셈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

이 모든 연구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건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행복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사건’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쌓이는 ‘습관’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물론 유전적으로 타고난 기질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습니다. 원래도 조금 예민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태평한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행복의 약 40%를 차지한다는 그 ‘의도적 활동’의 영역은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누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는지, 오늘 얼마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는지,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얼마나 집중했는지. 이런 사소해 보이는 선택들이 쌓여서 결국 삶 전체의 행복도를 결정짓습니다.

특히 SNS가 일상이 된 오늘날, ‘비교’라는 함정은 그 어느 시대보다 강력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남의 가장 빛나는 순간과 나의 가장 평범한 순간을 나란히 놓고 비교합니다. 하버드 연구와 덴마크의 사례가 공통으로 말해주는 건, 결국 이 비교의 방향을 ‘남’에게서 ‘어제의 나’로 돌리는 것, 그리고 소수의 사람과라도 진짜 깊은 관계를 맺는 것. 이 두 가지가 어쩌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행복의 기술일지도 모릅니다.

핵심 정리

  •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적응의 문제다. 사람은 좋은 일에도, 나쁜 일에도 놀랍도록 빠르게 적응한다(쾌락의 트레드밀).
  • 행복도 차이의 약 절반은 타고난 기질, 약 10%는 삶의 환경, 나머지 약 40%는 우리가 매일 선택하는 생각과 행동에서 온다.
  • 85년간 이어진 하버드 성인발달연구는 좋은 인간관계가 건강과 행복을 가장 강력하게 예측한다고 결론지었다.
  • 행복은 절대적 조건보다 상대적 비교에 크게 좌우된다. 누구와 비교하느냐가 얼마나 가졌느냐보다 중요할 수 있다.
  • 감사를 표현하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소수와 깊은 관계를 맺는 습관은 실제로 행복도를 높인다는 것이 반복적으로 검증됐다.

오늘의 한 문장

행복은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매일 다시 선택하는 것이다.

FAQ

Q1. 돈이 많으면 정말 행복해지지 않나요? 어느 정도까지는 그렇습니다. 기본적인 생계와 안전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소득 증가가 행복도를 뚜렷하게 높입니다. 하지만 기본 생활이 안정된 이후부터는 소득이 늘어나도 행복도 상승폭이 급격히 줄어드는 경향이 여러 연구에서 확인됐습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버는가’보다 ‘무엇에, 어떻게 쓰는가’입니다.

Q2. 행복한 사람들은 원래 성격이 좋은 건가요, 노력으로 되는 건가요? 둘 다 맞습니다. 유전적 기질이 행복도의 상당 부분을 설명하지만, 나머지 상당 부분은 매일의 습관과 사고방식에서 옵니다. 타고난 기질을 바꿀 수는 없어도, 감사 표현이나 관계 맺기 같은 습관은 누구나 훈련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 실험으로 확인된 부분입니다.

Q3. 행복도를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인가요? 연구자들이 공통으로 추천하는 방법은 감사 일기 쓰기, 가까운 사람과의 깊은 대화, 물건보다 경험에 돈 쓰기, SNS 비교 줄이기입니다.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작고 반복 가능한 습관이 효과가 크다는 것이 여러 실험에서 나타났습니다.

Q4. 왜 좋은 일이 생겨도 행복이 오래가지 않나요? ‘쾌락의 트레드밀’ 때문입니다. 사람의 뇌는 새로운 상태에 빠르게 적응하도록 진화했습니다. 새 차, 승진, 큰 집 모두 처음에는 큰 행복을 주지만, 뇌가 그 상태를 ‘새로운 기준선’으로 받아들이면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 수준의 행복도로 돌아갑니다.

Q5. 행복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세계행복보고서 등의 연구에서는 소득뿐 아니라 사회적 신뢰, 부패 인식, 복지 안전망, 자유로운 삶의 선택권, 그리고 어려울 때 의지할 사람이 있는지가 국가 간 행복도 차이를 설명하는 핵심 요인으로 꼽힙니다. 즉 국가의 행복도 역시 결국 ‘관계와 신뢰’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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