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란 무엇일까? — 한 소년이 끝내 배우지 못한 것
태어날 때부터 사람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아이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몸은 건강하고, 지능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본 적이 없을 뿐입니다. 이 아이를 뒤늦게 데려와 정성껏 가르친다면, 몇 년 뒤에는 우리와 똑같이 말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이 그렇다고 답할 것입니다. 사람다움이란 태어날 때부터 몸속에 새겨진 것이고, 사회는 그저 그것을 발휘할 무대를 제공할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800년 프랑스에서 실제로 이런 실험에 가까운 일이 벌어졌고, 그 결과는 우리의 짐작과 상당히 달랐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던지는 질문 하나가, 사회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며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를 생각보다 훨씬 깊은 곳까지 파고들게 만듭니다.
벌거벗은 채 숲을 뛰어다니던 아이
프랑스 남부 아베롱 지방의 숲에서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벌거벗은 채 네 발로 뛰어다니는 아이를 목격했다고 말해 왔습니다. 여러 차례 붙잡혔다가 도망치기를 반복한 끝에, 이 소년은 결국 파리로 보내졌습니다. 나이는 열두 살 안팎으로 추정되었을 뿐 정확히 알 수 없었고, 말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저명한 정신의학자 필리프 피넬은 그를 진찰한 뒤 선천적으로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가르쳐도 소용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판정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스물다섯 살의 젊은 의사 장 마르크 가스파르 이타르였습니다. 그는 이 아이가 지적으로 결핍된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 사회에서 자라날 기회를 얻지 못했을 뿐이라고 믿었습니다. 사람은 백지 상태로 태어나며, 그 백지에 무엇을 채워 넣는지는 전적으로 경험에 달려 있다는 로크의 생각을 이타르는 굳게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소년에게 빅토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오 년에 걸쳐 감각 훈련과 언어 교육을 시도했습니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였습니다. 빅토르는 글자 몇 개를 익혔고, 원하는 물건을 손으로 가리켜 표현하는 법을 배웠으며, 감자를 받으면 불에 구워 먹어야 한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숲에서 홀로 지내는 동안에도 최소한의 학습이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정작 이타르가 가장 공들였던 부분, 즉 완전한 언어와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자기 표현만큼은 끝내 그의 것이 되지 못했습니다. 빅토르는 창밖의 눈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고, 파리의 공원을 산책했지만, 다른 사람과 생각을 주고받는 존재로는 완성되지 못한 채 1828년 마흔 살 무렵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빅토르의 사례가 정신의학사에서 두고두고 인용되는 이유는, 지능이나 신체에 문제가 없는 사람조차 어릴 때 사회적 관계를 놓치면 언어와 자기 인식이라는 인간의 가장 핵심적인 능력을 되찾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다움이란 몸속에 미리 새겨진 것이 발현되는 과정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지는 무엇이라는 뜻입니다.
이 생각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미 인간을 폴리스적 동물이라고 불렀습니다. 흔히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로 번역되는 이 표현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고자 한 바는, 인간이 그저 무리 지어 사는 습성을 지녔다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언어와 이성,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 자체가 공동체 안에서만 완성될 수 있으며, 공동체를 떠난 인간은 온전한 의미의 인간일 수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벌이나 개미도 무리를 짓지만, 그들에게는 폴리스가 없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서면서 이와 정반대의 그림이 훨씬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개인이 먼저 존재하고, 그 개인들이 필요에 따라 모여 사회를 만들었다는 그림입니다.
“자연 상태”라는 상상의 문제
17세기의 토머스 홉스는 사회가 없던 시절을 상상해 보라고 제안했습니다. 그가 그린 자연 상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는 곳이었고, 그 안에서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비참하며 짧다고 묘사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끔찍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로 계약을 맺고 국가에 권력을 넘겼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습니다. 로크와 루소는 자연 상태를 좀 더 온화하게 그렸지만, 개인이 먼저 존재하고 사회는 그 개인들의 합의로 나중에 만들어졌다는 기본 구도만큼은 세 사람 모두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루소가 남긴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서나 사슬에 묶여 있다”는 문장은 이 구도를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경제학에서도 비슷한 상상이 오랫동안 쓰였습니다.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로빈슨 크루소가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지 스스로 판단하는 장면은, 개인의 선택에서 출발해 경제 원리를 설명하는 교과서적 도구로 널리 활용되어 왔습니다.
문제는 이 상상들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인류학과 고고학이 지금까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개인들이 먼저 뿔뿔이 흩어져 살다가 어느 날 모여서 계약을 맺고 사회를 발명한 사례는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현생 인류로 분류될 만한 존재는 처음부터 무리를 이루어 살았고, 언어와 도구, 규범은 그 무리 안에서 함께 자라났습니다. 로빈슨 크루소조차 자세히 들여다보면 완전히 고립된 개인이 아닙니다. 그는 난파선에서 도구와 씨앗을 챙겨 나왔고, 글을 읽고 쓸 줄 알았으며, 유럽 사회에서 배운 계산과 신앙의 틀 안에서 섬 생활을 꾸려 나갔습니다. 사회를 떠난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그는 이미 사회가 그에게 남겨준 자산을 쓰고 있었던 셈입니다.
공동체에서 결사체로
사회계약론이 상상해 낸 순서를 뒤집어 보면, 질문은 이렇게 바뀝니다. 사회가 개인들의 발명품이 아니라면, 사회는 대체 어떤 원리로 유지되고 어떻게 변해 왔을까요.
19세기 독일의 사회학자 페르디난트 퇴니에스는 1887년에 펴낸 저서에서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인간의 결속 방식을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라는 두 개념으로 나누었습니다. 게마인샤프트는 혈연과 이웃, 오랜 관습으로 묶인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가족과 마을이 대표적입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계산이나 선택 이전에 이미 서로에게 속해 있습니다. 반면 게젤샤프트는 낯선 사람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계약과 규칙으로 맺어지는 결사체를 가리킵니다. 회사와 도시, 시장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퇴니에스가 보기에 근대화란 다름 아니라 게마인샤프트가 게젤샤프트로 서서히 대체되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의 에밀 뒤르켐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같은 변화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전통 사회가 서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닮음을 통해 결속하는 기계적 연대에 기대고 있었다면, 산업화된 근대 사회는 저마다 다른 일을 맡아 서로에게 의존하는 유기적 연대로 옮겨 갔다고 보았습니다. 농부와 대장장이가 서로 다른 기술을 갖고 있기에 오히려 서로를 더 필요로 하게 되는 방식입니다. 뒤르켐이 남긴 또 하나의 개념은 사회적 사실이라는 말입니다. 언어와 화폐, 법률과 도덕규범은 어느 한 개인이 발명하거나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존재하며 개인의 행동을 은근히 강제하는 힘을 지닌다는 뜻입니다. 한국어 문법을 새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 문법 안에서 우리는 생각하고 말합니다.
초연결 시대, 흩어진 개인들
퇴니에스와 뒤르켐이 관찰했던 변화는 지금도 멈추지 않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지구 반대편 사람과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시대에, 사람들이 느끼는 외로움은 오히려 통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를 보입니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이런 현상을 사회적 자본의 감소라는 말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 볼링을 함께 치던 동네 모임이나 지역 봉사 단체처럼 얼굴을 맞대고 서로를 알아 가는 관계망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과 접속하면서도 더 얕은 관계 속에 머물게 되었다는 진단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게임 길드처럼 물리적으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의 모임을 사회라고 부를 수 있는지를 두고도 견해가 나뉩니다. 어떤 학자들은 공통의 규범과 정체성, 상호 의무가 형성된다면 물리적 거리와 무관하게 사회라고 부를 수 있다고 봅니다. 다른 학자들은 몸으로 함께 겪는 경험과 장기간의 상호 책임이 빠진 관계는 사회라기보다 느슨한 네트워크에 가깝다고 반박합니다. 이 논쟁이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사회라는 개념이 시대에 따라 계속 다시 정의되어야 하는 살아 있는 개념임을 보여줍니다.
소년이 끝내 얻지 못한 것
다시 빅토르에게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타르는 오 년 동안 그를 가르쳤지만 훗날 이 작업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뼈아픈 실패 가운데 하나로 기록했습니다. 지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언어와 자기 표현이라는 인간의 핵심 능력은, 그것을 배울 수 있는 특정한 시기에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형성되어야 하는데 빅토르에게는 그 시기가 이미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사회란 개인들이 각자의 이익을 계산한 끝에 나중에 합의해서 만든 도구가 아니라, 개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형성되는 바탕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가 쓰는 언어, 옳고 그름을 가르는 감각, 스스로를 하나의 인격으로 인식하는 능력까지도 처음에는 모두 다른 사람에게서 건네받은 것입니다. 이타르가 빅토르에게 끝내 건네주지 못한 것은 몇 개의 단어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어 있었어야 할 그 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자주 묻는 질문
빅토르는 이후 어떻게 되었나요?
이타르의 오 년에 걸친 교육 이후에도 빅토르는 완전한 언어를 구사하지 못했습니다. 이타르의 가정부였던 게랭 부인이 그를 계속 돌보았고, 빅토르는 파리에서 여생을 보내다 1828년 무렵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회계약론은 실제 역사적 사건을 설명한 것인가요?
아닙니다. 홉스와 로크, 루소가 그린 자연 상태와 사회계약은 실제 역사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한 사고 실험에 가깝습니다. 인류학과 고고학 자료는 이런 형태의 계약이 실제로 있었다는 증거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뒤르켐의 ‘사회적 사실’이란 정확히 무엇을 말하나요?
언어, 화폐, 법률, 도덕규범처럼 개인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전체의 힘을 가리킵니다. 뒤르켐은 이런 것들이 개인의 심리로 환원되지 않는, 사회 그 자체의 고유한 실재라고 보았습니다.
온라인 공동체도 사회로 볼 수 있나요?
학자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갈립니다. 공통의 규범과 소속감, 상호 의무가 존재한다면 사회로 볼 수 있다는 입장과, 물리적 상호작용과 장기적 책임이 빠진 관계는 느슨한 네트워크에 머무른다는 입장이 함께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