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사고의 함정

집단은 왜 개인보다 더 어리석어질까

1961년 4월, 워싱턴의 한 회의실에 미국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하버드 출신의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 CIA 국장 앨런 덜레스, 대통령의 동생이자 법무장관인 로버트 케네디, 역사학자이자 대통령 특별보좌관 아서 슐레진저 주니어까지. 그리고 그 앞에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앉아 있었습니다. 안건은 하나였습니다. CIA가 훈련시킨 쿠바 망명자 부대를 쿠바에 상륙시켜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릴 것인가.

회의실 안에 의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400명 남짓한 병력으로 20만 명에 달하는 쿠바 정규군을 상대한다는 계획에 고개를 갸웃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의심을 입 밖으로 꺼낸 사람은 없었습니다. 회의는 만장일치로 끝났고, 작전은 승인되었습니다.

사흘 뒤, 그 작전은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상륙 부대는 궤멸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포로로 붙잡혔습니다. 훗날 케네디는 참모들 앞에서 이렇게 물었다고 전해집니다. “우리는 오십 명 남짓, 그것도 가장 경험 많고 똑똑하다는 사람들이었는데, 대체 어쩌다 이렇게 멍청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이 오늘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따로 놓고 보면 하나같이 명석했던 사람들이, 한 방에 모이자 왜 이토록 허술한 결론에 도달했을까요.

예일대 심리학자가 붙인 이름

이 실패를 붙잡고 몇 년을 파고든 사람이 있습니다. 예일대학교의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입니다. 그는 베이 오브 피그스 침공을 비롯해 진주만 기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미 해군 지휘부, 확전을 거듭한 베트남전 정책 결정 과정을 나란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공통된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유능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일수록, 오히려 서로 다른 의견을 내지 못하고 하나의 결론으로 빠르게 수렴해버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재니스는 이 현상에 ‘집단사고(groupthink)’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가 정리한 특징 몇 가지는 이렇습니다. 구성원들은 우리 집단이 실패할 리 없다는 근거 없는 확신을 공유합니다.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은 굳이 그것을 꺼내지 않고 스스로 검열합니다. 회의 안에는 누구도 지시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지키는 침묵의 규칙이 생깁니다. 이의를 제기하면 팀워크를 해치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는 부담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회의실 밖에서는 상식적인 사람이, 회의실 안에서는 누구도 반박하지 않는 결정에 조용히 동참하게 됩니다.

선이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집단이 개인을 압도하는 힘은 정책 결정처럼 복잡한 문제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가장 단순한 사실 앞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1950년대, 심리학자 솔로몬 애쉬는 스와스모어 대학에서 간단한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참가자에게 기준이 되는 선 하나와, 길이가 각기 다른 세 개의 비교선을 보여주고 어느 것이 기준선과 같은 길이인지 답하게 했습니다. 정답은 누가 봐도 명백했습니다. 함정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한 방에 모인 예닐곱 명 중 진짜 참가자는 단 한 명뿐이었고, 나머지는 미리 짜고 틀린 답을 말하기로 한 실험 협조자들이었습니다.

혼자 답할 때는 오답률이 1%에도 못 미쳤습니다. 그런데 앞사람들이 모두 틀린 답을 큰소리로 말하자, 진짜 참가자의 오답률은 평균 32%까지 치솟았습니다. 전체 참가자의 4분의 3은 적어도 한 번은 명백히 틀린 다수의 답에 손을 들었습니다. 실험이 끝난 뒤 진행한 인터뷰에서 많은 참가자들은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답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유독 혼자 다른 답을 말해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눈으로 보고도 부정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집단이 개인에게 행사하는 압력의 실체입니다.

이야기가 너무 깔끔하다는 반론

여기서 잠시 멈춰서 짚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베이 오브 피그스가 집단사고의 교과서적 사례로 굳어진 지 반세기가 지나면서, 이 이야기 자체가 지나치게 단순화되었다는 반론도 나왔습니다. 이후 공개된 회의록과 관계자 증언을 다시 검토한 학자들은, 당시 참모들이 실제로는 여러 우려를 제기했고 케네디도 계획의 허점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문제는 침묵의 압력만이 아니라 부정확한 정보, 시간 압박, 새 정부의 경험 부족이 뒤섞인 복합적인 실패에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이 반론이 집단사고라는 개념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의 사건을 하나의 원인으로 깔끔하게 설명하고 싶어 하는 것 역시, 우리가 빠지기 쉬운 또 다른 종류의 성급한 합의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집단은 실패의 원인을 이해하는 방식에서도 지나치게 단순한 이야기로 쉽게 수렴합니다.

1986년 1월 28일, 73초

집단사고가 남긴 대가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습니다. 발사 전날 밤,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에 로켓 부품을 공급하던 회사 모턴 사이오콜의 엔지니어 로저 보아졸리는 상부에 다급하게 발사 연기를 요청했습니다. 예정된 발사일 아침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면서, 부스터 이음매를 밀봉하는 고무 오링이 저온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는 이전 발사에서 이미 그 위험을 목격한 적이 있었습니다.

경영진과 NASA 책임자들 사이에 격론이 오갔습니다. 하지만 챌린저호는 이미 여러 차례 발사가 미뤄진 상태였고, 관계자들은 이번에는 반드시 쏘아 올려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결국 우려는 ‘수용 가능한 위험’ 안에 있다는 판단으로 정리되었고, 발사는 예정대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륙 73초 만에 챌린저호는 공중에서 폭발했고, 탑승했던 승무원 7명 전원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베이 오브 피그스와 챌린저호는 얼핏 전혀 다른 사건처럼 보입니다. 하나는 외교와 군사, 다른 하나는 공학과 기술입니다. 그런데 두 사건 모두에서 개별 구성원은 위험을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위험을 큰소리로, 끝까지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소 한 마리의 무게를 800명이 맞혔습니다

여기서 이야기를 완전히 뒤집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집단이 늘 개인보다 어리석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1906년, 영국 플리머스의 한 농산물 품평회에 통계학자 프랜시스 골턴이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살찐 소 한 마리를 세워두고, 도축했을 때의 무게를 맞히는 대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은 6펜스를 내고 자신의 추측을 적어 냈습니다. 소를 직접 키워본 농부부터 그저 구경하러 온 마을 사람까지, 약 800명이 참가했습니다.

골턴은 참가자 개개인의 추측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787장의 유효한 표를 모아 중앙값을 계산한 순간, 그는 자신의 예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중앙값은 1,207파운드였고, 실제 도축된 소의 무게는 1,198파운드였습니다. 오차는 1%도 되지 않았습니다. 개개인의 추측은 제각각 크게 빗나갔지만, 그 추측들을 모두 모아 가운데 값을 취하자 어떤 전문가의 눈짐작보다도 정확한 답이 나온 것입니다.

무엇이 갈랐을까 — 군중과 무리 사이

같은 ‘여러 사람’인데, 왜 어떤 경우에는 개인보다 똑똑해지고 어떤 경우에는 개인보다 어리석어질까요. 두 상황을 나란히 놓아 보면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구분플리머스의 소 무게 맞히기베이 오브 피그스 회의실
판단 방식각자 독립적으로, 남의 답을 보지 않고 추측같은 방에서, 서로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논의
정보의 방향수백 개의 서로 다른 시각이 한곳에 모임소수의 시각이 다수의 침묵 아래 하나로 수렴
이의 제기 비용없음(익명으로 표만 제출)큼(반대하면 튀는 사람이 됨)
결과를 모으는 방법중앙값 계산(통계적 집계)만장일치를 향한 합의(사회적 압력)

이 표가 보여주는 핵심은 간단합니다. 여러 사람의 판단이 서로 영향을 주지 않은 채 독립적으로 모일 때, 개인의 실수는 서로 상쇄되고 집단은 똑똑해집니다. 반대로 여러 사람이 한 공간에서 서로의 표정과 반응을 확인하며 하나의 답으로 수렴하도록 압박받을 때, 소수의 오판이 다수의 침묵을 타고 그대로 굳어버립니다. 애쉬의 실험 참가자들이 눈앞의 답을 부정한 것도, 케네디의 참모들이 의심을 삼킨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다양성과 독립성이 사라진 자리에 동조 압력이 들어선 것입니다.

회의실에서 화면 속으로

이 원리는 20세기 회의실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오늘날 소셜미디어 타임라인은 어떤 의미에서 독립성이 완전히 제거된 회의실과 비슷합니다. 알고리즘은 내가 이미 동의할 만한 의견을 먼저 보여주고, 반대 의견은 뒤로 밀어냅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끼리 더 자주, 더 크게 목소리를 주고받습니다. 그 결과 한 무리 안에서는 압도적인 다수 의견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부풀려진 소수의 목소리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골턴의 소 무게 실험이 통하려면 참가자들이 서로의 답을 몰라야 했던 것처럼, 온라인 여론 역시 서로가 서로를 계속 확인하는 순간 통계적인 지혜에서 멀어져 사회적 동조로 넘어갑니다.

기업의 이사회, 정부의 정책 회의, 친한 친구들끼리의 투자 결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성원들이 편하고 친밀할수록, 역설적으로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기는 더 어려워집니다.

베이 오브 피그스, 그 후

이 이야기에는 뒷이야기가 하나 남아 있습니다. 베이 오브 피그스 실패 이후, 케네디는 참모 회의의 운영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이듬해 쿠바 미사일 위기가 터졌을 때, 그는 전체 회의 대신 작은 그룹으로 나누어 따로 논의하게 했고, 때로는 자신이 자리를 비워 참모들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반대 의견을 일부러 맡아 제기하는 역할까지 두었습니다. 같은 사람들이, 같은 위기 앞에서, 이번에는 전쟁 없이 위기를 넘겼습니다.

집단을 이루는 사람의 지능은 그대로였습니다. 달라진 것은 그 사람들이 서로에게 말할 수 있는 여지, 그것 하나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집단사고와 단순한 동조는 같은 개념인가요?

겹치지만 같지는 않습니다. 동조는 애쉬의 실험처럼 개인이 다수의 판단에 맞춰 자신의 답을 바꾸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집단사고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응집력이 강한 집단이 만장일치를 지키려는 욕구 때문에 대안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성급하게 결론에 도달하는 조직적 의사결정의 실패를 가리킵니다. 동조가 집단사고를 만드는 재료 중 하나라고 보면 됩니다.

애쉬의 동조 실험은 시대나 문화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나요?

이후 여러 나라에서 진행된 재현 연구들은 동조율이 문화권과 시대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다만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여러 연구에서도, 명백히 틀린 답 앞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최소 한 번은 다수를 따라간다는 큰 흐름 자체는 반복적으로 관찰되었습니다.

다수결은 항상 믿을 만한가요?

아닙니다. 골턴의 사례가 통했던 이유는 참가자들이 서로의 답을 모른 채 독립적으로 추측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서로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하나의 결론으로 몰려가는 상황이라면, 다수의 목소리는 통계적 지혜가 아니라 동조 압력의 산물일 가능성이 큽니다. 다수인지 아닌지보다, 그 다수가 얼마나 독립적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챌린저호 사고 이후 NASA는 무엇을 바꾸었나요?

사고 조사 이후 NASA는 안전 관련 의사결정 체계를 개편해, 기술진의 우려가 상부 경영진의 판단으로 곧장 덮이지 않도록 보고 절차와 독립적인 안전 감시 기능을 강화했습니다. 다만 이후에도 유사한 조직 문화 문제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직에서 집단사고를 줄이려면 무엇을 할 수 있나요?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회의에서 일부러 반대 의견을 맡는 역할을 지정하는 것, 최종 결론을 내리기 전 익명으로 의견을 먼저 모으는 것, 리더가 자신의 의견을 가장 늦게 밝히는 것, 그리고 외부 관점을 가진 사람을 의도적으로 논의에 포함시키는 것이 꼽힙니다. 핵심은 결국 누군가 다수와 다른 말을 해도 안전하다는 신호를 조직이 먼저 보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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