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욕망의 비극

맥베스는 왜 권력의 욕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일까?

런던의 한 극장, 배우들이 분장실에 모여 있다. 누군가 무심코 “맥베스”라는 제목을 입에 올리면, 주위 사람들은 순간 얼어붙는다. 관례대로라면 그 사람은 지금 즉시 분장실 밖으로 나가 세 바퀴를 돌고, 침을 뱉거나 욕설을 한 뒤, 문을 두드리며 다시 들여보내달라고 청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날 공연에서 누군가 다치거나, 세트가 무너지거나, 알 수 없는 사고가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우들은 웬만하면 이 제목을 아예 입에 담지 않는다. 굳이 말해야 할 때는 “그 스코틀랜드 연극”이라고 돌려 부른다.

400년도 더 된 희곡 하나가, 지금도 전 세계 극장가에서 이런 미신을 살아 있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이상하다. 셰익스피어가 쓴 다른 비극들, 이를테면 사랑 때문에 죽는 두 연인의 이야기나 아버지를 배신한 딸들의 이야기에는 이런 저주가 따라붙지 않는다. 유독 이 작품에만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을 찾아가다 보면, 이 희곡이 실제로는 얼마나 위태로운 진실을 건드리고 있었는지가 드러난다.

저주는 마녀들의 대사에서 시작되었다는 소문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셰익스피어가 극 중 마녀들의 주문을 쓸 때 실제로 존재하는 진짜 흑마법 문구를 그대로 가져다 썼고, 이를 불쾌하게 여긴 진짜 마녀들이나 악마가 이 작품 위에 저주를 내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cite index=”3-1″>이 전설은 오늘날에도 영미권 연극계에서 저주받은 연극이라는 인식을 유지시키는 근거로 자주 언급된다.</cite>

그러나 연극사 연구자들이 실제로 주목하는 이유는 훨씬 세속적이다. 이 작품은 칼싸움 장면이 유난히 많고, 어두운 조명 속에서 격렬한 동작이 이어지는 데다, 흥행이 어려운 극단들이 관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마지막 카드로 자주 올리는 작품이었다. 사고가 생길 조건이 애초에 다른 희곡보다 많았던 셈이다. 오랜 세월 쌓인 우연한 부상과 사고들이 하나둘 소문으로 엮이면서, 초자연적 저주라는 서사가 덧입혀졌다고 보는 쪽이 더 설득력 있다. <cite index=”5-1″>그래서 지금도 관계자들은 굳이 이 제목을 불러야 할 때 “The Scottish Play(스코틀랜드 연극)”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한다.</cite>

그런데 이 저주 이야기를 걷어내고 나면, 훨씬 흥미로운 질문이 남는다. 셰익스피어가 그린 맥베스라는 인물, 권력을 향한 욕망에 사로잡혀 파멸하는 그 남자는 대체 어디서 왔을까. 답은 뜻밖에도, 실제로 스코틀랜드를 다스렸던 어느 왕의 삶에서 출발한다.

실제 맥베스는 폭군이 아니었다

셰익스피어의 극 속에서 맥베스는 왕을 침소에서 살해하고 죄를 죄 없는 경비병에게 뒤집어씌우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데 셰익스피어가 참고한 16세기 역사서, 라파엘 홀린셰드의 연대기와 이후의 역사 연구를 살펴보면 실제 인물의 삶은 이와 상당히 다르다. <cite index=”9-1″>홀린셰드의 기록에서도 맥베스는 즉위 초반 17년 동안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린 성군으로 묘사되어 있었다.</cite> 실존 인물 막 베하드 막 핀들라크는 던컨 1세를 전투에서 죽이고 왕위에 올랐지만, 이후 오랜 기간 스코틀랜드를 안정적으로 통치했고 심지어 로마 순례까지 다녀올 여유가 있었을 만큼 재위가 견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던컨 쪽이다. 셰익스피어의 극에서 던컨은 인자하고 나약한 희생자로 등장하지만, <cite index=”9-1″>홀린셰드의 서술에 따르면 실제 던컨은 유약한 통치자였고, 영주들의 합의를 거쳐 후계자를 정하도록 되어 있던 스코틀랜드의 관습법을 어기고 어린 아들 맬컴을 임의로 세자로 책봉했다.</cite> 당시 스코틀랜드의 왕위 계승 방식은 직계 세습이 아니라 왕족 중 성인 남성이 추대되는 방식에 가까웠다. 이 틀에서 보면 맥베스의 즉위는 명백한 반역이라기보다, 당대 관습 안에서 벌어질 수 있었던 권력 다툼의 결과에 더 가까웠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셰익스피어는 왜 굳이 실제로는 유능했던 왕을 광기 어린 살인마로, 관습을 어긴 왕을 순진한 희생자로 뒤바꿔 그렸을까.

무대 위 마법의 거울, 객석의 왕을 향하다

답의 상당 부분은 이 희곡이 쓰인 시점, 1606년 무렵의 정치적 공기에 있다. 이 무렵 잉글랜드의 왕좌에는 제임스 1세가 앉아 있었다. 원래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였던 그는 엘리자베스 1세가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면서 잉글랜드 왕위까지 겸하게 된 인물이었다. <cite index=”9-1″>그런데 당대에는 이 제임스 1세가 극 중 뱅코의 후손이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cite>

셰익스피어는 이 소문을 놓치지 않았다. 원전 기록에서 뱅코는 맥베스의 왕위 찬탈에 함께 가담한 공범으로 등장하지만, 셰익스피어의 극에서는 맥베스의 손에 억울하게 살해당하는 결백한 희생자로 다시 태어난다. 극 중 맥베스가 마녀들에게 뱅코의 후손이 정말 이 나라를 다스리게 되느냐고 캐묻는 장면에서는, 왕들의 환영이 줄지어 등장하는데 그중 마지막 인물이 거울을 들고 있다. 이 거울이 실제 공연에서 객석에 앉은 제임스 1세의 얼굴을 비추도록 연출되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연극학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뱅코의 혈통과 스튜어트 왕조의 정통성을 무대 위에서 직접 확인시켜주는 장치였던 셈이다.

마녀들의 존재감 역시 우연이 아니다. <cite index=”8-1″>제임스 1세는 마법이 악마의 소행이라는 신학적 신념을 가진 인물로, 직접 마녀사냥과 관련된 저작인 《악마론》을 저술했고, 셰익스피어는 이 책의 여러 구절을 극 중 마녀 묘사에 실제로 활용했다.</cite> 왕이 개인적으로 몰두했던 주제를 무대 위에 그대로 재현한 셈이다. 정리하자면 《맥베스》는 순수하게 상상만으로 쓰인 이야기가 아니라, 새로 즉위한 왕의 혈통을 정당화하고 그의 취향을 반영하려는 계산이 짙게 밴 작품이었다. 실제 역사 속 유능한 왕을 광인으로 바꾸는 대가로, 셰익스피어는 눈앞의 권력자에게 훨씬 안전한 이야기를 지어 바친 셈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정말로 그리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까지 보면 오히려 의아해질 수 있다. 정치적 아부에 가까운 목적으로 쓰인 작품이, 어떻게 4백 년이 지나도록 권력욕을 가장 정확하게 그려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답은 바로 그 왜곡 자체에 있다. 셰익스피어는 실제 역사보다 훨씬 인간적인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다. 실존 맥베스가 계산된 정치 게임 끝에 즉위했다면, 극 중 맥베스는 처음부터 왕위를 노리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던컨의 충성스러운 장군이었고, 마녀들의 예언을 듣고도 한동안 망설인다. 살인이라는 선택지를 스스로 떠올리기는 하지만, 그 순간 곧바로 몸서리를 치며 그 생각을 밀어낸다.

이 지점이 중요하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맥베스가 처음부터 사악한 인물로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안에서 솟아오르는 욕망을 스스로도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 망설임을 무너뜨리는 것은 초자연적 예언이 아니라, 그 옆에서 끊임없이 야망을 부추기는 아내다. 남편의 결단력 부족을 질타하며 왕을 죽이도록 몰아붙이는 맥베스 부인의 존재로 인해, 이 비극은 한 개인의 타고난 악함이 아니라 욕망과 설득, 그리고 순간의 선택이 뒤엉켜 만들어내는 파국으로 완성된다.

던컨을 살해한 이후 극의 무게중심은 완전히 바뀐다. 왕위를 얻은 순간부터 맥베스는 오히려 잠을 이루지 못하고, 환영 속에서 피 묻은 단검을 보고, 자신이 죽인 친구 뱅코의 유령이 연회석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에 혼자 경악한다. 왕비 역시 다르지 않다. 몽유병 환자가 되어 밤마다 손을 씻는 시늉을 하며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지우려 애쓰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저지른 단 한 번의 선택이, 이후 두 사람의 정신을 완전히 갉아먹는 과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 구조, 욕망을 이루기 위한 단 한 번의 선택이 이후 걷잡을 수 없는 파괴로 이어지는 구조가, 이 작품을 권력욕에 관한 가장 정교한 심리 보고서로 만든다. 맥베스는 태어날 때부터 괴물이 아니었다. 그는 유능하고 존경받는 장군이었고,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서서히 인간성을 잃어가는 과정을 관객 앞에 그대로 드러낸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저주가 아니라, 이 몰락의 과정이 지나치게 익숙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4백 년 뒤 심리학이 뒤늦게 확인한 것

셰익스피어가 무대 위에서 직관적으로 포착한 이 과정을, 현대 심리학은 훨씬 나중에야 체계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cite index=”13-1″>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대커 켈트너는 권력을 쥔 사람일수록 타인의 감정을 읽는 능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는 현상을 오랫동안 연구해왔고, 이를 뇌손상에 빗대어 설명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cite> 권력이라는 지위 자체가 사람의 공감 회로를 서서히 둔화시킨다는 것이다.

정치학자 브라이언 클라스 역시 수백 명의 최고 권력자를 인터뷰한 연구에서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의 저작에 따르면 <cite index=”12-1″>권력이 부패하는 방식과 권력자의 심리를 정치학, 행동경제학, 진화생물학의 여러 이론으로 분석했을 때,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이들에게 권력이 주어졌을 때 벌어지는 파국은 결코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다.</cite>

셰익스피어는 이런 연구가 존재하기 3백 년도 전에, 실험이나 통계가 아니라 한 장군의 심리를 무대 위에서 해부하는 방식으로 같은 진실에 도달해 있었다. 권력을 향한 욕망이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애초에 악한 자에게서만 자라나기 때문이 아니라, 유능하고 신뢰받던 평범한 사람의 내면에서도 얼마든지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진실 말이다.

다시, 분장실의 침묵으로

배우들이 여전히 이 제목을 입에 담기 꺼리는 이유를 굳이 초자연적 저주에서 찾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정말로 불편해하는 것은 유령이나 마법이 아니라, 이 이야기 속 남자가 자신과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던컨의 침소 앞에서 잠시 멈춰 섰던 맥베스의 망설임은, 크든 작든 무언가를 더 갖고 싶어 스스로와 씨름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완전히 낯설지만은 않은 감정이다.

그 망설임이 무너지는 순간부터 벌어지는 일들, 잠들지 못하는 밤과 지워지지 않는 손의 얼룩은 그래서 여전히 무대 위에서 사람들을 얼어붙게 만든다.

자주 묻는 질문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실제 역사와 얼마나 다른가요?

상당히 다르다. 실존 인물인 막 베하드는 던컨을 전투에서 죽이고 왕위에 올라 이후 17년간 비교적 안정적으로 스코틀랜드를 통치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셰익스피어의 극에서는 맥베스가 잠든 왕을 암살하고 곧바로 광기와 몰락에 휩싸이는 인물로 재구성되었다.

왜 셰익스피어는 역사를 그렇게 바꾸어 썼나요?

당대 국왕이었던 제임스 1세가 극 중 뱅코의 후손이라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원전에서 맥베스의 공범이었던 뱅코를 결백한 희생자로 바꾸면서, 셰익스피어는 새 왕조의 정통성을 무대 위에서 은근히 뒷받침한 것으로 여겨진다.

맥베스 저주는 실제로 있었던 일인가요?

초자연적 저주가 실재했다는 근거는 없다. 다만 이 작품이 격렬한 결투 장면이 많고, 흥행이 부진한 극단들이 자주 무대에 올렸던 사정 때문에 다른 희곡보다 사고가 잦았고, 이 우연들이 쌓이며 저주라는 전설로 굳어졌다는 설명이 더 널리 받아들여진다.

배우들은 왜 “맥베스”라는 제목을 직접 말하지 않나요?

공연 관계자들 사이의 오랜 관습 때문이다. 굳이 제목을 언급해야 할 때는 “The Scottish Play(스코틀랜드 연극)”라는 완곡한 표현을 대신 쓰고, 실수로 제목을 말했을 경우에는 분장실 밖으로 나가 몸을 돌리고 욕설을 뱉은 뒤 다시 문을 두드려 들어오는 의식을 치른다고 전해진다.

맥베스 부인은 실제로도 존재했던 인물인가요?

그루오크라는 이름의 실존 인물이 있었고, 던컨 1세의 왕비였다가 이후 맥베스와 결혼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셰익스피어가 묘사한 것처럼 남편을 부추겨 왕을 암살하게 했다는 구체적인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며, 이 부분은 극작가의 창작에 가깝다.


메타 설명: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왜 4백 년째 배우들이 제목조차 말하기 꺼리는 저주받은 연극으로 남아 있을까요? 실제 역사 속 성군이었던 왕이 어떻게 광기 어린 살인마로 다시 태어났는지, 그리고 그 왜곡이 오히려 권력욕을 가장 정교하게 그려낸 이유를 살펴봅니다.

태그: 맥베스, 셰익스피어, 제임스1세, 권력욕, 서양문학, 비극, 스코틀랜드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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