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뮬레이션 속에 살고 있을까?
2012년 가을,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 대학 핵이론연구소의 물리학자 세 사람이 조금 이상한 논문 한 편을 아카이브에 올렸습니다. 실라스 빈, 조레 다부디, 마틴 새비지라는 이름의 이 연구자들은 원래 쿼크와 글루온이 어떻게 뭉쳐 양성자와 중성자를 이루는지를 계산하는 이론물리학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쓴 논문의 제목은 「숫자 시뮬레이션으로서의 우주에 대한 제약」이었습니다. 우주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라면, 그 사실이 우주 어딘가에 흔적을 남겼을 것이고, 그 흔적을 실제로 찾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들은 공상과학 소설을 쓴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이 매일 다루는 격자 양자색역학 계산법, 그러니까 시공간을 촘촘한 격자로 잘라 계산하는 방법을 거꾸로 뒤집어 본 것입니다. 만약 우주 전체가 이런 격자 위에서 돌아가는 계산이라면, 아주 높은 에너지를 가진 우주선 입자들의 경로에서 격자의 흔적이 드러나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이들은 실제로 그 흔적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구체적인 계산식까지 제시했습니다.
진지한 물리학자들이 왜 이런 질문에 계산을 붙였을까요. 그리고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답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졌을까요.
접시 속의 죄수, 동굴 속의 인간
우주가 진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사실 어제오늘의 것이 아닙니다. 기원전 4세기, 플라톤은 「국가」에서 평생 동굴에 묶여 벽에 비친 그림자만 보고 자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림자가 곧 세계 전부였습니다. 17세기에는 데카르트가 비슷한 의심을 던졌습니다. 어쩌면 전능한 악마가 내 모든 감각을 조작하고 있어서, 내가 확신하는 모든 것이 속임수일 수도 있다는 사고 실험이었습니다.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장자 역시 나비가 된 꿈을 꾸고 깨어난 뒤, 자신이 나비 꿈을 꾼 사람인지 지금 사람 꿈을 꾸는 나비인지 알 수 없다고 적었습니다.
이 오래된 의심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셋 다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가 진짜가 아닐 가능성을 진지하게 다루면서도, 그것을 확인할 방법은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검증할 수 없는 회의론은 흥미롭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기가 어렵습니다.
2003년, 옥스퍼드 대학의 철학자 닉 보스트롬이 이 오래된 질문에 처음으로 계산 가능한 형태를 부여했습니다. 그가 철학 계간지에 발표한 13쪽짜리 논문의 제목은 단순했습니다. 「당신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속에 살고 있는가?」 그런데 이 논문이 실제로 주장한 내용은 사람들이 흔히 아는 것과 조금 다릅니다. 보스트롬은 우리가 시뮬레이션 속에 있다고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다음 세 가지 명제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참이어야 한다고 논증했습니다.
첫째, 인류를 포함한 지적 생명체는 조상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을 만큼 발전한 기술 단계, 이른바 포스트휴먼 단계에 도달하기 전에 거의 예외 없이 멸종한다. 둘째, 설령 그런 기술 단계에 도달하더라도, 그런 문명은 조상의 삶을 재현하는 시뮬레이션을 만드는 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셋째, 우리는 거의 확실히 컴퓨터 시뮬레이션 속에 살고 있다.
이 세 문장을 나란히 놓고 보면 이상한 결론이 나옵니다. 만약 첫 번째와 두 번째 명제가 모두 거짓이라면, 그러니까 문명이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아서 실제로 조상 시뮬레이션을 대량으로 만든다면, 세 번째 명제는 저절로 참이 되어야 합니다. 진짜 조상은 인류 역사 전체에서 단 한 번 존재했지만, 그 조상을 재현한 시뮬레이션은 이론상 수없이 많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하나와 가짜 수백만 가운데 무작위로 하나를 뽑는다면, 진짜를 뽑을 확률은 당연히 낮아집니다.
“이 세계가 진짜일 확률은 수십억 분의 1”
이 논증을 대중의 술자리 화제로 끌어올린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2016년 6월, 테슬라와 스페이스엑스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코드 콘퍼런스 무대에 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진짜 현실, 즉 원본 세계에 있을 가능성은 수십억 분의 1에 불과하다고 말입니다. 그의 논리는 이랬습니다. 40년 전 비디오 게임은 픽셀 몇 개로 만든 퐁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실사에 가까운 그래픽을 구현합니다. 이런 발전 속도가 조금이라도 계속된다면, 머지않아 게임은 현실과 구분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를 것이고, 그런 게임을 만들 수 있는 문명이라면 그런 게임을 수도 없이 찍어낼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머스크의 계산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라 보스트롬 논증의 대중적 번역이었습니다. 어느 문명이 단 두 개의 조상 시뮬레이션만 만들고, 그 시뮬레이션 속 문명이 다시 각각 두 개씩 시뮬레이션을 만든다고 가정해도, 몇 단계만 반복하면 시뮬레이션의 수는 순식간에 수백만, 수십억으로 불어납니다. 반면 원본 현실은 언제나 단 하나뿐입니다. 이 비대칭이 머스크가 말한 수십억 분의 1이라는 숫자의 정체입니다.
다만 이 논증에는 스스로 허무는 구석이 있습니다. 머스크 본인도 지적했듯, 인류가 실제로 완전한 현실 시뮬레이션을 만들어내는 순간, 논리는 두 가지 경우로 좁혀집니다. 우리가 시뮬레이션을 만들 수 있는 원본 문명이거나, 혹은 우리 자신이 이미 그런 시뮬레이션 안에 있거나. 두 경우 모두 확률 계산에 영향을 주지만, 정작 그 시뮬레이션이 기술적으로 가능한지는 누구도 증명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바로 이 지점에서 빈, 다부디, 새비지의 2012년 논문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철학적 논증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검증 가능한 질문으로 바꾸려 했습니다. 논리는 이렇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자들이 강한 핵력을 계산할 때 쓰는 격자 양자색역학은 시공간을 아주 작은 정육면체 격자로 나누어 근사합니다. 계산 능력이 발전할수록 격자의 간격은 점점 촘촘해지지만, 아무리 정교해져도 완전히 매끄러운 연속체는 될 수 없습니다.
이들은 물었습니다. 만약 우리 우주 자체가 먼 미래의 문명이 만든 이런 격자 시뮬레이션이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격자의 방향성이 우주 어딘가에 자국을 남겼을 것입니다. 이들이 주목한 곳은 우주에서 날아오는 초고에너지 우주선이었습니다. 계산에 따르면, 만약 시공간이 격자 위에 놓여 있다면 가장 높은 에너지를 가진 우주선 입자들은 격자의 면을 따라서만 이동해야 하고, 사방으로 고르게 퍼지지 않고 특정 방향으로 쏠리는 비대칭성을 보여야 합니다. 이들은 이 비대칭이 나타날 최소 격자 간격까지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했습니다.
이 제안은 물리학계에서 처음으로 나온 진짜 의미의 검증 가능한 시뮬레이션 가설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짚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시공간이 특정 스케일 아래에서 매끄럽지 않다는 생각 자체는 사실 시뮬레이션 가설이 없어도 물리학에서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온 주제입니다. 플랑크 길이라 불리는 약 10의 마이너스 35제곱미터라는 극히 작은 거리 아래에서는, 양자중력을 다루는 고리양자중력 이론이든 끈이론이든 상관없이 많은 물리학자가 시공간 자체가 더 이상 매끄러운 연속체가 아닐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다시 말해, 시공간에 최소 단위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해도, 그것이 곧 누군가 우주를 프로그래밍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격자와 픽셀이라는 비유가 주는 인상이 너무 강해서, 이 둘을 혼동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빈과 동료들의 논문이 발표된 지 십여 년이 지났지만, 예측된 우주선의 비대칭성은 아직 관측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이론이 완전히 틀렸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필요한 에너지 영역에서 충분한 데이터가 아직 쌓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절반의 확률, 혹은 반증 불가능한 질문
머스크가 수십억 분의 1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숫자를 던진 반면, 2020년 컬럼비아 대학의 천문학자 데이비드 키핑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습니다. 그는 베이즈 통계를 이용해 보스트롬의 트릴레마를 다시 계산했습니다. 키핑의 핵심 지적은 이랬습니다. 보스트롬의 논증은 조상 시뮬레이션을 만드는 일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는데, 그 전제 자체가 아직 증명된 바 없는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 불확실성을 계산에 포함시키면, 시뮬레이션과 원본 현실 사이의 확률은 머스크가 말한 것처럼 압도적으로 기울지 않고, 오히려 반반에 가까워지며 아주 근소하게 원본 현실 쪽으로 기운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리학자 사비네 호센펠더를 비롯한 다른 학자들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회의적입니다. 이들의 지적은 이렇습니다. 시뮬레이션이 충분히 정교하다면, 관측자가 어떤 이상 징후를 발견하더라도 그 즉시 프로그램이 오류를 수정해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관측하든 시뮬레이션 가설과 모순되지 않게 되고, 이는 곧 이 가설이 원리적으로 반증할 수 없는 질문이 된다는 뜻입니다. 반증할 수 없는 주장은 과학의 언어로는 다루기 어렵습니다. 검증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무엇이 달라질까
이쯤에서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설령 우리가 정말로 시뮬레이션 속에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머스크는 이 가능성을 다소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쪽이었습니다. 그는 술자리에서조차 이 화제를 꺼내지 않는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는 2022년 저서 「리얼리티 플러스」에서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설령 우리가 사는 세계가 디지털 기반 위에서 돌아간다 해도, 그 세계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고통과 기쁨, 사랑과 상실은 조금도 덜 진짜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기반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가 그 위에서 일어나는 경험의 진실성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신경세포의 전기 신호로 경험한다는 사실이 그 경험을 가짜로 만들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우주선을 기다리며
빈, 다부디, 새비지의 논문이 발표되었을 때, 이들 중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시뮬레이션이 충분히 크다면 우리와 비슷한 우주가 저절로 나타날 것이고, 그 안에서 격자의 흔적을 찾는 일만 남았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 흔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논문이 남긴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을 다루는 새로운 방식이었습니다. 플라톤의 동굴도, 데카르트의 악마도, 검증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 명의 핵물리학자는 형이상학적 의심을 우주선 관측이라는 구체적인 실험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정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질문을 던지는 방식만큼은 이전과 달라졌습니다.
오늘 밤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 순간에도, 지구 어딘가의 검출기들은 우주 저편에서 날아온 초고에너지 입자들을 하나둘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데이터 어딘가에 격자의 흔적이 숨어 있을지, 아니면 애초에 찾을 격자 자체가 없을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시뮬레이션 가설이란 정확히 무엇을 주장하는 이론인가요?
시뮬레이션 가설은 우리가 사는 우주가 실제로는 훨씬 발전한 문명이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2003년 닉 보스트롬이 제시한 원래 논증은 우리가 시뮬레이션 속에 있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인류 멸종, 시뮬레이션에 대한 무관심, 시뮬레이션 속 존재라는 세 가지 가능성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참이어야 한다는 논리적 구조를 제시할 뿐입니다.
일론 머스크는 왜 우리가 시뮬레이션 속에 있다고 말했나요?
머스크는 2016년 비디오 게임의 그래픽이 몇십 년 만에 픽셀 몇 개짜리 화면에서 실사에 가까운 수준으로 발전한 것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이런 발전 속도가 이어진다면 현실과 구분되지 않는 시뮬레이션을 만드는 문명이 등장할 것이고, 그런 문명은 시뮬레이션을 수없이 만들어낼 것이므로 우리가 진짜 원본 현실에 있을 확률은 매우 낮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습니다.
시뮬레이션 가설을 실제로 검증할 방법이 있나요?
2012년 워싱턴 대학의 물리학자들이 격자 양자색역학 계산법을 이용해 검증 가능한 방법을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우주가 격자 위에서 계산되고 있다면 초고에너지 우주선 입자의 경로가 특정 방향으로 쏠리는 비대칭성을 보여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만 이 예측된 흔적은 지금까지 관측되지 않았고, 많은 물리학자는 이 가설이 애초에 반증할 수 없는 형태로 설계되어 있다고 지적합니다.
시뮬레이션 가설이 사실일 확률은 실제로 얼마나 되나요?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보스트롬 본인은 세 가지 가능성에 각각 비슷한 확률을 부여해 대략 3분의 1 정도로 추정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반면 2020년 천문학자 데이비드 키핑은 베이즈 통계를 이용한 재계산에서, 조상 시뮬레이션이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자체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불확실성을 반영하면 확률이 절반에 가까워지고 오히려 근소하게 원본 현실 쪽으로 기운다고 주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