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진짜 원인 대신 약한 한 사람에게 분노를 쏟는 군중을 상징한 이미지

사회는 왜 위기 때마다 희생양을 찾을까? — 분노가 약자를 향하는 이유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관동 지역에 진도 7.9의 강진이 덮쳤습니다. 도쿄와 요코하마 일대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고, 화재까지 겹쳐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지진이 일어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도쿄 거리에는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는 근거 없는 유언비어였습니다. 아무런 증거도 없었지만, 공포에 질린 시민들은 그 소문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사이, 자경단과 흥분한 군중의 손에 수천 명의 조선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진이라는 자연재해가 죽인 사람보다, 그 뒤에 이어진 인간의 분노가 죽인 사람이 결코 적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땅이 흔들린 것은 조선인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하필 그들에게 분노를 쏟아냈을까요? 사실 이런 일은 관동대지진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14세기 유럽에 흑사병이 돌았을 때도, 사람들은 “유대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며 유대인 공동체를 학살했습니다. 2020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쳤을 때도, 아시아계 사람들을 향한 혐오 범죄가 급증했습니다. 시대도 다르고, 나라도 다르고, 위기의 종류도 다른데, 인간 사회는 놀랍도록 비슷한 패턴을 반복합니다. 위기가 닥치면, 진짜 원인을 찾아 해결하기보다 누군가를 지목해 분노를 쏟아붓는 것입니다. 이 글은 그 이상한 반복의 이유를 파헤쳐 보려 합니다. 우리 안에 숨어 있는 ‘희생양 심리’는 대체 어디서 왔으며, 왜 하필 약한 존재를 향하고, 오늘날 우리는 이 오래된 습성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희생양을 찾는 심리는 먼 옛날의 미신이나 무지한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뉴스 댓글창에서, SNS 타임라인에서, 회사 회의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경기가 나빠지면 이민자 탓을 하고, 회사 실적이 떨어지면 신입사원이나 특정 부서를 탓하고, 팀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가장 말이 없던 팀원을 탓합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진짜 원인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조선인이 관동대지진을 일으키지 않았듯, 유대인이 흑사병을 퍼뜨리지 않았듯, 오늘날 우리가 지목하는 대상도 사실은 위기의 진짜 원인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희생양을 찾는 순간, 우리는 진짜 문제 해결에서 멀어집니다. 그래서 이 심리를 이해하는 일은 단순한 교양을 넘어, 우리 사회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이 됩니다.

역사적·사회적 배경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이 현상을 깊이 연구한 대표적인 학자입니다. 그는 인간 사회가 오래전부터 집단 내부의 긴장과 폭력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희생양 메커니즘’을 사용해 왔다고 주장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이것이 실제 종교 의식으로 나타났습니다. 히브리 성서에는 매년 속죄일에 제사장이 염소 한 마리에게 공동체의 죄를 상징적으로 떠넘긴 뒤, 그 염소를 광야로 내쫓는 의식이 등장합니다. 바로 여기서 ‘스케이프고트(scapegoat)’, 즉 희생양이라는 단어가 유래했습니다. 놓아준다는 뜻의 ‘escape’와 염소를 뜻하는 ‘goat’가 합쳐진 말입니다.

고대인들이 이런 의식을 만든 이유는 단순합니다. 공동체 안에 쌓인 불안과 갈등을 방치하면 언젠가 폭발해 서로를 향한 폭력으로 번질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노를 하나의 대상에게 몰아주고, 그 대상을 공동체 밖으로 내보내면 어떨까요? 사람들은 마치 문제가 해결된 것 같은 심리적 안도감을 얻습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저 존재가 사라졌으니 이제 괜찮다”는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지라르는 이 메커니즘이 종교 의식에만 머물지 않고, 인류 역사 내내 형태를 바꿔가며 반복되어 왔다고 보았습니다. 마녀사냥, 인종 학살, 정치적 숙청, 심지어 회사 안의 ‘왕따 문화’까지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노는 왜 하필 약자를 향하는가

그렇다면 이 오래된 심리 구조가 실제로 작동하는 원리를 하나씩 뜯어보겠습니다. 핵심은 크게 네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첫째, 위기는 통제할 수 없는 불안을 만듭니다. 사람의 뇌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황을 가장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지진, 전염병, 경제 붕괴처럼 눈에 보이지 않고 손쓸 수 없는 원인 앞에서 사람들은 극심한 무력감을 느낍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통제감 상실’이라고 부르는데, 인간은 통제감을 잃으면 견디지 못하고 어떻게든 그 통제감을 되찾으려 합니다. 문제는 진짜 원인이 바이러스나 지각판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 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대상을 대신 찾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좌절은 안전한 방향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1930년대 심리학자 존 달러드와 동료들은 ‘좌절-공격 가설’이라는 이론을 내놓았습니다. 사람이 어떤 목표를 이루지 못해 좌절하면 공격성이 쌓이는데, 이 공격성은 반드시 좌절의 진짜 원인을 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진짜 원인이 너무 강력하거나, 너무 추상적이거나, 보복이 두려운 대상일 경우, 사람들은 공격성을 더 안전하고 만만한 대상에게 돌립니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혼난 직장인이 집에 와서 가족에게 짜증을 내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국가 경제가 무너졌을 때 정부나 대기업,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국제 금융 시스템을 탓하기는 어렵지만, 이미 사회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이민자나 소수집단을 탓하기는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반박할 힘도, 정치적 영향력도, 언론에 접근할 통로도 적기 때문입니다.

셋째, 집단은 ‘우리’와 ‘그들’을 나누며 결속합니다. 사회심리학자 헨리 타지펠의 ‘사회정체성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는 순간 다른 집단을 실제보다 더 낯설고 위협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는 이 경향이 훨씬 강해집니다. 위기 앞에서 “우리는 하나다”라는 결속을 만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그들 때문이다”라는 공동의 적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그들’이 실제로 위협적이어서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회에서 이질적이거나 낯설게 여겨지던 존재였기 때문에 선택된다는 것입니다. 흑사병 시기의 유대인, 관동대지진 시기의 조선인, 코로나19 시기의 아시아계 이민자는 모두 그 이전부터 이미 ‘이방인’으로 여겨지던 존재들이었습니다. 위기는 새로운 편견을 만든다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편견의 뇌관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합니다.

넷째, 권력은 이 심리를 정치적으로 이용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희생양 만들기는 저절로 퍼지기도 하지만, 종종 권력을 가진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부추겨진다는 점입니다.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는 자연발생적으로 퍼진 것이 아니라, 일부 지역 경찰과 관료 조직을 통해 조직적으로 유포되었다는 사실이 이후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나치 독일 역시 제1차 세계대전 패전과 대공황이라는 실제 위기 앞에서, 유대인을 향한 증오를 국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부추겼습니다. 지도자 입장에서 희생양은 매우 유용한 도구입니다. 자신의 정책 실패나 무능함을 감출 수 있고, 대중의 분노를 자신이 아닌 다른 대상으로 돌릴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오히려 지지 기반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네 가지 단계가 겹쳐지면, 위기는 늘 비슷한 결말을 향해 갑니다. 진짜 원인에 대한 분석과 대응은 뒤로 밀려나고, 이미 약자로 낙인찍힌 존재를 향한 폭력이 그 자리를 대신 채우는 것입니다.

실제 사례

말로만 설명하면 와닿지 않을 수 있으니, 시대를 넘나들며 실제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흑사병과 유대인 학살(1348~1351년)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가량을 앗아간 흑사병은 당시 의학 지식으로는 원인을 전혀 알 수 없는 재앙이었습니다. 공포에 질린 유럽 각지에서 “유대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소문이 퍼졌고, 스트라스부르에서는 하루 만에 유대인 공동체 수백 명이 화형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흑사병의 실제 원인은 벼룩을 매개로 한 페스트균이었고, 유대인 공동체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습니다.

세일럼 마녀재판(1692~1693년) 미국 매사추세츠 세일럼 마을에서는 흉작과 인디언과의 갈등, 종교적 긴장이 겹치며 사회적 불안이 극도로 높아져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몇몇 소녀들이 이상 증세를 보이자, 마을은 ‘마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20여 명이 마녀로 몰려 처형되었는데, 훗날 역사가들은 마녀로 지목된 사람들이 대개 마을 안에서 경제적, 사회적으로 힘이 약했던 여성들이었다는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1923년) 앞서 소개한 대로, 지진과 화재라는 자연재해 앞에서 조선인을 향한 유언비어가 퍼졌고, 자경단에 의한 학살로 이어졌습니다. 일본 정부의 공식 조사에서도 이 사건의 상당 부분이 실제로는 근거 없는 유언비어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인정된 바 있습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이민자 혐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사실 대형 금융기관의 무분별한 파생상품 거래와 규제 실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위기 이후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극우 정당의 지지율이 급상승했고, 이들 대부분은 금융시스템 개혁보다 이민자와 외국인 노동자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방식으로 대중의 분노를 흡수했습니다.

코로나19와 아시아계 혐오 범죄(2020년~) 바이러스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 앞에서, 미국과 유럽 곳곳에서 아시아계 시민을 향한 혐오 발언과 폭력이 급증했습니다. 미국의 한 시민단체 집계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수천 건의 아시아계 혐오 사건이 보고되었는데, 피해자 대부분은 바이러스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평범한 시민들이었습니다.

비교로 보는 희생양의 패턴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아래 표를 보면 놀라울 만큼 비슷한 구조가 반복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기실제 위기의 원인지목된 희생양희생양이 선택된 배경
1348~51년 유럽페스트균(벼룩 매개)유대인 공동체이전부터 존재하던 종교적 이질감
1692년 세일럼흉작, 종교적 긴장사회적 약자 여성들경제·사회적 지위가 낮음
1923년 일본대지진과 대화재재일 조선인식민지배 관계 속 기존 차별
1930년대 독일1차대전 패전, 대공황유대인오래된 반유대주의 정서
2008년 유럽금융기관 부실 경영이민자, 외국인 노동자경제 위기 속 기존 이방인 인식
2020년대 팬데믹신종 바이러스 확산아시아계 시민발원지에 대한 막연한 연상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 희생양으로 지목된 대상은 위기의 실제 원인과 거의 관련이 없습니다. 대신 이미 사회 안에서 ‘이방인’이나 ‘약자’로 인식되던 존재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즉, 위기가 편견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편견을 위기가 증폭시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

이 오래된 심리는 지금도 형태만 바꿔 계속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매출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종종 경영 전략이나 시장 환경보다 만만한 팀이나 개인을 탓합니다. 뉴스에서 어떤 사회 문제가 불거지면,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와 댓글창은 복잡한 구조적 원인 대신 특정 집단을 손쉬운 표적으로 삼곤 합니다. SNS 시대에는 이 과정이 훨씬 빨라졌습니다. 몇 시간 만에 특정 인물이나 집단이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히고, 사실관계가 채 확인되기도 전에 여론의 심판이 내려지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 심리를 안다고 해서 우리가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뇌는 여전히 통제할 수 없는 불안 앞에서 손쉬운 설명을 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이 구조를 알고 있는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쏟아지는 비난이 “정말 타당한 근거에 기반한 것인지” 한 번 더 물어볼 힘을 갖게 됩니다.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을 지켜준 것도, 유대인을 숨겨준 유럽인들도, 결국은 그 순간 “정말 저 소문이 사실일까?”라고 멈춰 서서 질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위기 속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빠른 분노가 아니라, 잠깐의 의심과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핵심 정리

  • 인류는 오래전부터 공동체의 불안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특정 대상에게 책임을 몰아주는 ‘희생양 메커니즘’을 반복해 왔습니다.
  • 이 메커니즘은 통제감 상실에서 오는 불안, 좌절-공격성의 방향 전환,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집단 심리, 권력의 정치적 이용이라는 네 단계로 작동합니다.
  • 희생양으로 지목되는 대상은 대개 위기의 실제 원인과 무관하며, 이미 사회적으로 약하거나 이질적으로 여겨지던 존재인 경우가 많습니다.
  • 흑사병, 세일럼 마녀재판, 관동대지진, 나치 독일, 2008년 금융위기, 코로나19 등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같은 패턴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 이 심리를 이해하는 것은 위기 상황에서 성급한 비난 대신 진짜 원인을 향한 질문을 던지는 힘이 됩니다.

오늘의 한 문장

“위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늘 두 종류의 흔적이 남는다. 하나는 진짜 원인이 남긴 상처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대신 지목한 무고한 이의 눈물이다.”

FAQ

Q1. 희생양(scapegoat)이라는 단어는 어디서 유래했나요? 히브리 성서의 속죄일 의식에서, 제사장이 공동체의 죄를 염소 한 마리에게 상징적으로 떠넘긴 뒤 광야로 내보낸 데서 유래했습니다. ‘놓아주다(escape)’와 ‘염소(goat)’가 합쳐진 말입니다.

Q2. 희생양 심리는 누구나 가지고 있나요? 네, 특정 인종이나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심리의 보편적인 특성으로 여겨집니다. 통제할 수 없는 불안 앞에서 눈에 보이는 원인을 찾으려는 경향은 문화와 시대를 가리지 않고 관찰됩니다.

Q3. 왜 희생양은 항상 사회적 약자가 되나요? 좌절과 분노는 보복이 두렵거나 반박이 어려운 강한 대상보다, 사회적 발언권과 방어력이 약한 대상을 향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미 사회에서 이질적으로 인식되던 집단일수록 손쉬운 표적이 됩니다.

Q4. 이런 현상을 막을 방법이 있나요?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위기 상황에서 소문이나 비난의 근거를 확인하려는 습관, 그리고 다양한 목소리를 존중하는 사회 시스템이 희생양 만들기의 확산 속도를 늦출 수 있습니다.

Q5.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실제 역사적 사실인가요? 네,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 근거 없는 유언비어로 인해 다수의 재일 조선인이 자경단 등에 의해 희생된 사건으로, 일본의 공식 조사와 다수의 역사 연구를 통해 사실로 확인된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 글이 도움이 되었다면 주변 사람과 공유해 보세요.

함께 읽으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