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햄릿』이 400년 동안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를 상징적으로 담은 이미지

셰익스피어는 왜 400년이 지나도 읽힐까? — 인간은 왜 아직도 햄릿 속에 살고 있을까

1601년 어느 겨울밤, 런던 템스강 남쪽의 글로브 극장. 나무 관람석과 흙바닥 입석에는 빵 냄새, 땀 냄새, 그리고 오렌지 껍질 냄새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관객의 절반은 글을 읽을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숨을 죽이고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젊은 왕자가 해골 하나를 손에 들고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 순간 극장 안의 소란이 뚝 멈춥니다. 귀족도, 상인도, 하녀도, 도둑도 똑같이 그 대사에 사로잡힙니다.

그리고 정확히 420여 년이 지난 지금, 서울 대학로의 작은 소극장에서도, 뉴욕 브로드웨이의 화려한 무대에서도, 도쿄의 실험극장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이야기를 보러 갑니다. 넷플릭스에는 햄릿을 모티프로 한 드라마가 계속 만들어지고, 라이온 킹의 심바 이야기도, 어벤져스의 로키도 사실은 햄릿의 그림자를 밟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도대체 400년 전에 죽은 극작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아, 우리의 드라마와 영화와 광고 카피에까지 스며들어 있는 걸까요?

더 이상한 건 이것입니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의 영어는 지금 우리가 쓰는 영어와 상당히 다릅니다. 그가 쓴 단어의 뜻도, 문법도, 시대의 상식도 지금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왕과 신하, 결투와 유령, 궁정의 음모라는 소재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낡은 이야기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웃고, 소름이 돋습니다. 이 글은 바로 그 수수께끼를 따라가 보려 합니다. 셰익스피어라는 한 인간이 어떻게 시간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는지, 그리고 왜 우리는 아직도 햄릿이라는 우유부단한 왕자 속에서 우리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는지 말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셰익스피어 이야기는 단순히 ‘옛날 작가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이 만든 이야기 중 어떤 것이 시간을 이겨내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매년 수천, 수만 편의 영화와 드라마와 소설을 소비합니다. 그중 대부분은 몇 달, 길어야 몇 년 안에 잊힙니다. 그런데 유독 몇몇 이야기만이 세대를 넘어 계속 다시 읽히고, 다시 공연되고, 다시 각색됩니다.

이 현상을 이해하면 우리는 두 가지를 얻습니다. 첫째,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실마리를 얻습니다. 둘째, 인간이라는 존재가 시대와 상관없이 반복해서 씨름하는 근본적인 질문들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셰익스피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을 이해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문학 전공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왜 사람인지 궁금한 모든 이를 위한 이야기입니다.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세상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1564년의 잉글랜드는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고전적이고 우아한 유럽’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런던 인구는 약 20만 명 정도였고, 거리에는 오물이 넘쳤으며, 페스트가 수시로 도시를 휩쓸었습니다. 실제로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해에도 그의 고향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는 페스트로 마을 인구의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가 살아남은 것부터가 우연이었습니다.

당시 런던의 극장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고급 예술의 전당’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서커스와 도박장, 그리고 곰을 개와 싸움 붙이는 오락 시설과 나란히 자리한 대중오락의 공간이었습니다. 입장료는 1페니, 요즘 돈으로 치면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관객석에는 귀족부터 마부, 어부, 매춘부까지 온갖 계층의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즉 셰익스피어는 처음부터 ‘고상한 문학’을 쓰려던 사람이 아니라, 온갖 계층의 사람들을 동시에 웃기고 울려야 먹고살 수 있는 상업 극작가였습니다.

이 지점이 중요합니다. 셰익스피어의 글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애초에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서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그는 순수예술가라기보다 흥행을 걱정해야 하는 시나리오 작가에 가까웠습니다. 그의 극단 ‘체임벌린스 멘’은 관객이 들지 않으면 그날로 파산할 수 있는 사업체였습니다. 그러니 그는 살아남기 위해 지루한 장면을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당시 잉글랜드가 격변의 시대였다는 사실입니다. 헨리 8세의 종교개혁 이후 잉글랜드는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서 흔들렸고, 왕위 계승을 둘러싼 암투와 처형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후사 없이 늙어가고 있었고, 사람들은 다음 왕이 누가 될지, 그로 인해 또 어떤 피바람이 불지 몰라 불안해했습니다. 왕이 살해당하고, 형제가 형제를 배신하고, 충신이 하루아침에 반역자로 몰리는 일이 실제로 사람들의 현실이었습니다. 햄릿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와 왕비를 동시에 차지한 삼촌 클로디어스의 이야기는, 당대 관객에게는 먼 옛날 덴마크의 전설이 아니라 바로 옆 나라, 어쩌면 자신들의 나라에서도 일어날 법한 이야기로 읽혔을 것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정확히 무엇을 다르게 했나

1. 인물이 ‘변하는’ 존재라는 발견

셰익스피어 이전의 많은 연극 속 인물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성격을 유지했습니다. 착한 사람은 끝까지 착하고, 악한 사람은 끝까지 악했습니다. 이런 인물을 우리는 흔히 ‘평면적 인물’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인물들은 다릅니다. 햄릿은 극이 시작할 때와 끝날 때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초반의 햄릿은 생각만 많고 행동은 못 하는, 스스로도 자신을 한심해하는 청년입니다. 그런데 극이 진행되며 그는 점점 냉철하고 결단력 있는 인물로 변해갑니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요? 우리는 현실에서 사람이 변하는 것을 매일 목격합니다. 어제까지 우유부단하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단호해지기도 하고, 확신에 차 있던 사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인간은 원래 일관되지 않은 존재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이 사실을 400년 전에 이미 무대 위에 그대로 옮겨놓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인물들은 ‘이야기 속 캐릭터’가 아니라 ‘내가 아는 누군가’ 혹은 ‘나 자신’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2. 독백이라는 발명품

햄릿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사실 줄거리가 아니라 ‘독백’입니다. 셰익스피어 이전에도 독백은 존재했지만, 대부분 관객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용도였습니다. “나는 지금 이러이러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식의 정보 전달이었습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독백은 다릅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시작하는 유명한 독백에서 햄릿은 어떤 계획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살아야 할지 죽어야 할지, 삶이라는 고통을 견디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이 나은지,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채 실시간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관객은 햄릿의 ‘결론’을 듣는 것이 아니라 햄릿의 ‘생각하는 과정’ 그 자체를 지켜보게 됩니다.

이것은 문학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전환입니다. 인간의 내면, 그러니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속의 갈등과 모순을 무대 위에 날것 그대로 펼쳐 보인 최초의 시도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소설이나 영화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인물의 내적 갈등을 따라가는 서사 방식’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셰익스피어와 만나게 됩니다.

3. 언어를 발명하는 사람

셰익스피어는 약 1,700개가 넘는 단어를 처음으로 만들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외로운(lonely)’, ‘떠들썩한(hurry)’, ‘경쟁자(rival)’와 같은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영어 단어들이 사실 그의 손끝에서 처음 문서에 등장했거나 새로운 의미를 얻었습니다. 그는 명사를 동사로, 동사를 형용사로 자유자재로 바꿔 쓰면서 언어에 없던 표현을 만들어냈습니다.

이것을 오늘날에 비유하자면, 한 명의 작가가 만든 신조어가 국어사전에 수백 개씩 정식으로 등재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만큼 그의 언어 감각은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수준을 넘어, 언어 자체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매일 셰익스피어가 만든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4. 정답을 주지 않는 이야기

셰익스피어의 진짜 힘은 그가 ‘교훈’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의 비극 속 인물들은 명확하게 선하지도, 명확하게 악하지도 않습니다. 햄릿은 정의로운 복수를 하려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사랑하는 여인 오필리아를 잔인하게 대하고, 무고한 사람을 실수로 죽이기도 합니다. 클로디어스는 형을 죽인 살인자이지만, 극 중에서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괴로워하며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렇게 인물을 선악의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는 태도는, 관객으로 하여금 “이 사람이 옳은가 그른가”를 스스로 판단하게 만듭니다. 정답을 주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계속 그 이야기로 돌아가 자기 시대의 언어로 다시 답을 찾으려 합니다. 이것이 바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400년 동안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야기 자체가 열려 있기 때문에,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자기 시대의 도덕관으로, 20세기 사람들은 정신분석학의 언어로, 오늘날 사람들은 또 다른 언어로 햄릿을 계속 다시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햄릿은 어디에나 있다

이 영향력을 실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 속에서 햄릿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의 뼈대를 살펴보면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삼촌이 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고, 조카는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며, 죽은 아버지의 환영이 나타나 복수를 촉구합니다. 심바가 스스로를 의심하며 방황하는 모습은 햄릿이 결단을 미루며 방황하던 모습과 구조적으로 겹칩니다. 물론 결말은 다르지만, 이야기의 골격은 셰익스피어에게서 빌려온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마블 영화 속 로키 역시 자주 언급되는 사례입니다. 형에 대한 열등감, 왕위에 대한 갈망,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 괴로워하는 로키의 캐릭터는 많은 평론가들에 의해 셰익스피어의 비극적 인물들, 특히 야망에 사로잡힌 인물들과 곧잘 비교됩니다.

한국 창작물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형제 혹은 부자간의 권력 다툼, 복수를 미루며 괴로워하는 주인공, 광기와 진심을 오가는 인물의 이중성은 국내 사극이나 스릴러 드라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서사 구조입니다. 물론 모든 이야기가 셰익스피어를 직접 참고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권력욕과 복수심, 우유부단함을 다루는 서사의 기본 문법을 셰익스피어가 가장 먼저 정교하게 완성해 놓았기 때문에, 이후의 창작자들은 알게 모르게 그 문법 위에서 이야기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기업의 마케팅이나 정치 연설에서도 셰익스피어의 표현은 끊임없이 인용됩니다. “모든 세상은 무대다(All the world’s a stage)”라는 문장은 지금도 자기계발서나 강연에서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이는 그의 언어가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왜 다른 고전과도 다른가

시간이 지나도 살아남은 고전은 셰익스피어 말고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는 다른 고전들과 어떤 점에서 차별화될까요? 아래 표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구분그리스 비극 (예: 소포클레스)근대 소설 (예: 도스토옙스키)셰익스피어
인물의 성격운명에 정해진 성격, 거의 변하지 않음심리 묘사가 정교하지만 서술자를 거쳐 전달됨인물이 스스로 말하며 실시간으로 변화함
전달 방식합창단(코러스)이 해설과 도덕적 판단을 제공긴 지문과 서술로 상황을 설명대사와 독백만으로 모든 것을 전달, 해설자 없음
계층적 접근성종교 축제의 일부로 특정 계층 중심문해력이 필요한 독서 계층 대상글을 몰라도 즐길 수 있는 대중 공연
도덕적 결론신의 뜻과 운명을 강조, 교훈이 비교적 명확작가의 세계관이 서술에 스며듦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관객의 판단에 맡김
언어의 성격정형화된 운문, 격식 있는 표현 중심산문 중심의 정교한 심리 묘사운문과 산문을 넘나들며 새로운 어휘를 창조

이 표에서 알 수 있듯, 셰익스피어의 독보적인 점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형식’과 ‘깊이 있는 인간 탐구’를 동시에 잡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 비극은 깊이가 있지만 대중적 접근성이 떨어졌고, 근대 소설은 심리 묘사가 정교하지만 문해력이 필요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글을 모르는 하녀도 즐길 수 있는 오락이면서, 동시에 수백 년 후 철학자와 정신분석학자들이 논문을 쓸 만큼 깊은 텍스트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작가는 인류 역사상 흔치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

그렇다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햄릿과 셰익스피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첫째, 햄릿이 겪는 근본적인 고민, 즉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은 지금도 우리가 매일 겪는 감정입니다. 해야 할 일을 알면서도 미루고, 옳다고 믿으면서도 확신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경험은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보편적 조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셰익스피어를 ‘먼 옛날 얘기’가 아니라 ‘지금 나의 이야기’로 계속 읽습니다.

둘째, 셰익스피어는 우리에게 좋은 이야기의 조건을 알려줍니다. 정답을 강요하지 않고, 인물이 살아 움직이며 변화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깊은 질문을 던지는 것. 이것은 오늘날 넷플릭스 드라마를 만들든,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든, 회사에서 발표 자료를 만들든 여전히 유효한 원칙입니다. 사람들은 완벽하게 정리된 결론보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흔들리는 이야기에 더 오래 머무릅니다.

셋째, 셰익스피어는 언어와 표현이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표현 중 상당수가 실은 400년 전 한 극작가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은, 말과 글이 가진 힘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핵심 정리

  • 셰익스피어는 상업 극장이라는 대중적 환경에서 활동하며, 모든 계층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 그의 인물들은 이야기 속에서 실제로 ‘변화’하는 입체적 존재였고, 이는 당시 연극에서는 드문 방식이었습니다.
  • 독백을 통해 인간의 내면 갈등을 처음으로 생생하게 무대 위에 옮겼습니다.
  • 약 1,700개가 넘는 새로운 단어와 표현을 만들어 영어 자체를 확장했습니다.
  • 그는 명확한 도덕적 결론을 강요하지 않아, 시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될 여지를 남겼습니다.
  • 라이온 킹, 마블 영화 등 현대의 수많은 이야기가 알게 모르게 그의 서사 구조를 빌려 쓰고 있습니다.

오늘의 한 문장

셰익스피어가 400년을 살아남은 이유는 그가 정답을 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도 답을 찾고 있는 질문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FAQ

Q1. 셰익스피어는 실존 인물이 맞나요? 네, 실존 인물입니다. 1564년 잉글랜드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태어나 1616년 사망했습니다. 다만 그의 생애에 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는 그의 작품을 실제로 다른 인물이 썼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논쟁도 존재하지만, 주류 학계에서는 셰익스피어 본인의 저작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Q2. 햄릿의 유명한 대사 “죽느냐 사느냐”는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이 대사는 삶의 고통을 참고 견디며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한 삶과 죽음의 선택이 아니라, 인간이 고통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압축한 표현으로 해석됩니다.

Q3. 셰익스피어 작품을 처음 읽기 좋은 순서는 무엇인가요? 비교적 줄거리가 명확하고 몰입도가 높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맥베스’로 시작한 뒤, 심리적으로 더 복잡한 ‘햄릿’으로 넘어가는 방법을 흔히 추천합니다. 원문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현대어 번역본이나 쉬운 해설이 곁들여진 판본으로 먼저 접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Q4.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현대 창작물에 영향을 준 구체적인 예로 무엇이 있나요? 앞서 언급한 라이온 킹, 마블의 로키 캐릭터 외에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작품의 리더십 서사는 헨리 5세의 연설 구조를 참고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권력 다툼과 복수, 정체성 혼란을 다루는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셰익스피어의 서사 문법을 기반에 두고 있습니다.

Q5. 셰익스피어가 만든 단어나 표현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외로운(lonely)’, ‘경쟁자(rival)’, ‘떠들썩한(hurry)’ 등 오늘날 일상적으로 쓰이는 영어 단어들이 그의 작품에서 처음 등장하거나 새로운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모든 세상은 무대다”와 같은 표현은 지금도 널리 인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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