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를 집필하는 톨스토이

톨스토이는 왜 세계 최고의 소설가라 불릴까?

82세 노인이 한밤중에 가출한 이유

1910년 10월 28일 새벽, 러시아의 한 저택에서 여든두 살의 노인이 몰래 짐을 쌌습니다. 그는 하인에게 조용히 말을 준비시켰고, 아내가 잠든 사이 편지 한 장을 남긴 채 집을 빠져나갔습니다.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도주였습니다. 열흘 뒤, 그는 시골의 작은 간이역에서 폐렴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노인의 이름은 레프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를 쓴, 당대 유럽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존경받던 작가였습니다. 그는 러시아 최고의 명문 백작 가문 출신이었고, 수천 헥타르의 영지와 수백 명의 농노를 소유했으며, 전 세계에서 그의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순례하듯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인도의 간디는 그에게 편지를 보내 조언을 구했고, 톨스토이가 쓴 짧은 도덕적 우화들은 러시아 전역의 농민 학교에서 교과서처럼 읽혔습니다.

그런데 왜 이 모든 것을 가진 노인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자기 집에서 도망쳐야 했을까요? 그리고 더 근본적인 질문 하나. 톨스토이는 대체 무엇을 썼기에,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 최고의 소설가”라는 수식어가 그의 이름 앞에 자동으로 따라붙는 걸까요? 도스토옙스키도 있고, 셰익스피어도 있고, 발자크도 있는데 말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리는 한 인간이 겪은 극단적인 모순부터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는 누구보다 삶을 사랑하면서도 누구보다 죽음을 두려워했고, 누구보다 육체적 쾌락에 탐닉했으면서도 누구보다 금욕을 설파했습니다. 바로 이 모순이야말로 그의 소설을 다른 모든 소설과 다르게 만든 핵심 재료였습니다.

‘위대한 소설가’라는 칭호의 무게

문학사에서 “위대하다”는 형용사는 흔하게 쓰입니다. 그러나 톨스토이에게 붙는 수식어는 조금 다른 층위에 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그를 두고 “소설가들 중의 소설가”라 불렀고, 제임스 조이스는 “톨스토이와 비교하면 다른 작가들은 어린아이 같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그의 평생 라이벌이자 사상적 대척점에 있던 도스토옙스키조차 톨스토이의 재능 앞에서는 경외감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누가 더 훌륭한 작가인가”라는 순위 놀이 때문이 아닙니다. 톨스토이가 소설이라는 장르로 무엇을 해냈는지를 이해하면, 우리는 문학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대치가 무엇인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는 소설을 오락에서 철학으로, 이야기에서 삶 그 자체로 끌어올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좋은 이야기와 위대한 이야기를 구별하는 안목을 기르는 데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

백작이 된 고아, 도박에 빠진 청년

톨스토이는 1828년, 러시아 툴라 지방의 야스나야 폴랴나라는 영지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름 자체가 이미 특권을 말해줍니다. 톨스토이 가문은 표트르 대제 시절부터 이어져 온 러시아 최고위 귀족이었고, 그가 태어난 저택에는 대대로 수백 명의 농노가 딸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유년은 결코 평온하지 않았습니다. 두 살 때 어머니를,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고모의 손에 자랐습니다.

청년기의 톨스토이는 우리가 상상하는 ‘위대한 작가’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카잔 대학에 입학했지만 성적 불량으로 자퇴했고, 이후 몇 년간 도박과 사교계 파티, 방탕한 생활에 빠져 살았습니다. 도박으로 진 빚을 갚기 위해 영지의 일부와 대저택 건물을 팔아야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가 20대에 남긴 일기에는 스스로에 대한 혹독한 자책과 도덕적 결심, 그리고 그 결심을 매번 깨뜨리는 자신에 대한 환멸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전환점은 군 복무였습니다. 그는 캅카스 전쟁과 크림 전쟁, 특히 세바스토폴 포위전에 장교로 참전했습니다. 포탄이 떨어지는 참호 속에서, 그는 처음으로 죽음을 코앞에서 목격했습니다. 병사들이 아무 의미도 없이 죽어가는 모습, 장군들의 허영과 위선, 그리고 그 모든 혼란 속에서도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의 경이로움. 이 경험을 바탕으로 쓴 『세바스토폴 이야기』는 러시아 전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심지어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직접 읽고 감명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전쟁을 영웅담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혼란과 공포로 묘사한 최초의 작품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는 정확히 무엇을 다르게 썼는가

왜: 삶을 통째로 담고 싶었던 야심

톨스토이가 다른 작가들과 근본적으로 달랐던 지점은 야심의 크기였습니다. 대부분의 소설가는 한 인물, 하나의 사건, 하나의 감정을 깊이 파고듭니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처음부터 “삶 전체”를 그리고 싶어 했습니다. 『전쟁과 평화』를 쓰기 시작할 때 그는 편지에 이렇게 남겼습니다. 자신이 쓰려는 것은 소설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총체적인 경험이라고 말입니다.

이 야심은 단순한 허영이 아니었습니다. 톨스토이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이라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 안에서, 황제부터 농노까지, 전장의 장군부터 무도회의 소녀까지, 수백 명의 인물이 각자의 논리로 살아가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한 사람이 신의 시점에서 한 시대 전체를 내려다보려는 시도와 같았습니다.

어떻게: ‘내적 독백’이라는 발명품

톨스토이의 진짜 혁신은 인물의 ‘내면’을 다루는 방식에 있었습니다. 그 이전의 소설들은 인물의 생각을 설명할 때 대체로 작가가 개입해 정리해주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그는 슬펐다”, “그녀는 분노했다” 같은 식으로 말이죠. 그러나 톨스토이는 인물의 머릿속에서 감정과 생각이 뒤섞이고, 모순되고, 스스로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를 문장에 담아냈습니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가 기차역 플랫폼으로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녀의 머릿속에는 남편에 대한 원망, 브론스키에 대한 애정과 배신감,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찰, 그리고 삶에 대한 환멸이 거의 동시에, 뒤섞인 채로 흘러갑니다. 이것은 이후 제임스 조이스나 버지니아 울프가 완성하게 될 ‘의식의 흐름’ 기법의 명백한 원형입니다. 문학평론가들은 톨스토이가 인간의 사고 과정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 최초의 작가 중 하나라고 평가합니다.

또 다른 혁신은 ‘낯설게 하기’였습니다. 톨스토이는 익숙한 것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묘사하는 데 탁월했습니다. 『전쟁과 평화』에서 오페라 극장 장면을 묘사할 때, 그는 무대 위 배우들의 행동을 마치 외계인이 관찰하듯 서술합니다. “무대 위에서는 반쯤 벌거벗은 사람들이 나무판 위에서 이상한 몸짓을 하고 있었다”는 식으로 말이죠. 이 기법은 러시아 형식주의 비평가 빅토르 시클롭스키에 의해 ‘오스트라네니예(ostranenie)’, 즉 ‘낯설게 하기’라는 이름으로 이론화되었고, 이후 문학 이론의 핵심 개념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도덕적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 소설

톨스토이의 소설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인간의 도덕적 딜레마를 절대 손쉽게 봉합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명백히 불륜을 저지른 여성이지만, 톨스토이는 그녀를 단순한 악녀나 희생자로 그리지 않습니다. 독자는 그녀의 선택에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그 선택이 불러온 파국을 목도해야 합니다. 이런 복합성은 소설을 읽는 행위를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훈련으로 만듭니다.

오늘날 의미로 가는 다리: 완벽주의자의 지옥

이 모든 창작의 뒤에는 한 인간의 고통스러운 완벽주의가 있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쓰면서 원고를 최소 여덟 번 통째로 다시 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아내 소피야 톨스타야는 촛불 아래서 남편의 난삽한 손글씨 원고를 정서하는 일을 수년간 반복해야 했습니다. 한 번은 톨스토이가 이미 인쇄소로 넘긴 교정쇄를 다시 가져오게 해서 전체 문단을 새로 고쳐 썼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이 강박적인 수정 과정이야말로 그의 문장이 그토록 정교하면서도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두 개의 결작, 그리고 하나의 회심

톨스토이의 경력은 크게 두 시기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전쟁과 평화』(1869)와 『안나 카레니나』(1877)를 쓴 ‘소설가 톨스토이’의 시기입니다. 이 시기의 그는 세속적 삶의 모든 결을 사랑하는 작가였습니다. 무도회의 설렘, 사냥의 짜릿함, 첫사랑의 떨림, 전장의 공포까지 모든 것을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그런데 『안나 카레니나』를 완성한 직후, 톨스토이는 극심한 정신적 위기에 빠집니다. 이른바 ‘아를자마스의 공포’라 불리는 사건으로, 그는 여행 중 한 여관에서 한밤중에 알 수 없는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부와 명예, 가족, 문학적 성취를 모두 이룬 그 순간, 그는 오히려 “이 모든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이 경험을 담아 『고백록』을 썼고, 이후 삶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두 번째 시기의 톨스토이는 자신의 재산을 부정하고, 채식을 하고, 손수 농사를 지으며 검소한 삶을 실천하려 했습니다. 그는 예수의 산상수훈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는 무저항주의와 비폭력 사상을 발전시켰고, 이는 이후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비폭력 저항 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작권 수익까지 포기하려 했고, 이는 다자녀를 부양해야 했던 아내 소피야와 극심한 갈등을 낳았습니다. 서두에서 언급한 ’82세 노인의 가출’은 바로 이 오랜 갈등의 폭발이었습니다. 자신의 신념과 가족의 현실적 필요 사이에서 끝내 화해하지 못한 채, 그는 눈 내리는 간이역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톨스토이 vs 도스토옙스키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이야기할 때 톨스토이와 함께 반드시 언급되는 이름이 도스토옙스키입니다. 두 사람은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서 활동했지만 접근 방식은 정반대였습니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은 평생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습니다.

구분톨스토이도스토옙스키
출신 배경대지주 귀족, 풍족한 유년몰락한 하급 귀족, 궁핍한 삶
대표작『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문체명료하고 균형 잡힌 문장, 파노라마식 서사신경질적이고 몰아붙이는 문장, 내면의 극단
관심 대상사회 전체, 역사의 흐름 속 개인극한 상황에 몰린 개인의 심리
종교관제도 교회를 부정, 실천적 도덕주의러시아 정교의 신비주의에 경도
인간관인간은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존재인간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모순적 존재

이 비교표가 흥미로운 이유는, 두 사람 모두 ‘위대한 소설가’로 불리지만 위대함의 결이 전혀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도스토옙스키가 인간 영혼의 어두운 심연을 파고들었다면, 톨스토이는 삶이라는 거대한 강물의 흐름 전체를 조망했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이시구로 가즈오는 한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엔 도스토옙스키의 격정에 끌렸지만 나이가 들수록 톨스토이의 균형 잡힌 시선을 더 존경하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

톨스토이가 남긴 것은 단지 두 편의 고전 소설이 아닙니다. 그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오락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가장 정교한 탐구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오늘날 넷플릭스 드라마나 장편 시리즈물이 여러 인물의 시점을 오가며 하나의 시대를 총체적으로 그려내는 방식, 이른바 ‘군상극’ 구조는 사실 톨스토이가 150년 전 소설로 이미 완성해 놓은 방식입니다.

또한 그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물질적 성공과 사회적 존경을 모두 거머쥔 사람이, 왜 삶의 마지막에 이르러 그 모든 것을 부정하려 했을까요? 톨스토이의 후반생은 ‘성공’이라는 것이 반드시 ‘의미’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진짜 질문은 재산이나 명예가 아니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성취 지향적인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입니다.

핵심 정리

  •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대지주 귀족 가문 출신으로, 청년기의 방탕한 생활과 크림 전쟁 참전 경험을 거쳐 작가가 되었습니다.
  • 그의 핵심 혁신은 인물의 내면을 뒤섞인 날것 그대로 재현하는 ‘내적 독백’ 기법과, 익숙한 것을 낯설게 묘사하는 ‘낯설게 하기’ 기법입니다.
  • 대표작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는 개인의 삶과 시대의 흐름을 동시에 담아낸 파노라마식 서사의 정점으로 평가받습니다.
  • 『안나 카레니나』 완성 후 극심한 정신적 위기를 겪은 그는 이후 금욕적이고 도덕주의적인 삶으로 전환했으며, 이는 간디와 킹 목사의 비폭력 사상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 도스토옙스키와 종종 비교되지만, 두 사람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과 문체 모두에서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 그의 82세 가출과 죽음은 물질적 성취와 삶의 의미 사이의 오랜 내적 갈등이 응축된 사건이었습니다.

오늘의 한 문장

톨스토이가 위대한 이유는 그가 삶의 모든 모순—사랑과 환멸, 부와 죄책감, 확신과 방황—을 회피하지 않고 소설 속에 고스란히 살려냈기 때문입니다.

FAQ

Q1. 톨스토이의 대표작은 무엇인가요? 가장 널리 꼽히는 대표작은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입니다. 그 외에도 후기작인 『이반 일리치의 죽음』, 『크로이체르 소나타』 등도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Q2.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중 누가 더 위대한 작가인가요? 두 사람의 위대함은 서로 다른 결을 가지고 있어 우열을 가리기 어렵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 심리의 극단을, 톨스토이는 삶 전체의 총체적 흐름을 그려내는 데 탁월했습니다.

Q3. 톨스토이는 왜 말년에 재산을 부정했나요? 『안나 카레니나』 완성 후 겪은 극심한 정신적 위기와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그는 물질적 소유와 세속적 성공이 삶의 의미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그는 복음서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려는 도덕주의적 삶을 추구했습니다.

Q4. 톨스토이는 어떻게 죽었나요? 1910년, 여든두 살의 나이에 아내와의 오랜 갈등 끝에 한밤중 집을 떠났고, 열흘 후 시골의 작은 간이역에서 폐렴으로 사망했습니다.

Q5. 『전쟁과 평화』는 정말 그렇게 어렵고 긴 소설인가요? 분량은 방대하지만(러시아어 원서 기준 약 1,200쪽), 문장 자체는 명료하고 이해하기 쉬운 편입니다. 다만 수백 명의 등장인물과 러시아식 이름 표기 방식 때문에 초반 진입 장벽이 있다는 평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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