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 폭발의 원리

화산은 왜 갑자기 폭발할까요?

1980년 5월 18일 일요일 아침, 미국 워싱턴주 세인트헬렌스산에서 북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관측소에는 지질학자 한 명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름은 데이비드 A. 존스턴. 동료들이 모두 안전한 곳으로 물러난 뒤에도 그는 자리를 지켰습니다. 산의 움직임을 정확히 기록하고 위험을 알리는 일이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전 6시 그의 측정값은 어떠한 이상 활동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지진 활동도, 가스 방출량도, 지표면 온도도 지난 한 달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전 8시 32분, 북쪽 사면 바로 아래를 진앙으로 하는 규모 5.1의 지진이 발생하며 화산의 해당 부분이 미끄러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존스턴은 무전기를 붙잡고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밴쿠버, 밴쿠버, 바로 이거야.” 몇 초 뒤 그의 목소리는 끊어졌고, 다시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지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세인트헬렌스산은 그해 3월부터 두 달 가까이 지진계와 관측 장비로 하루도 빠짐없이 감시받던 화산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정작 폭발이 시작되는 순간, 계기판에는 아무런 사전 경고도 뜨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촘촘히 지켜보던 화산이 마지막 순간까지 침묵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답을 따라가다 보면 “압력이 계속 쌓이다가 뚜껑처럼 터진다”는, 우리가 화산 폭발에 대해 흔히 가지고 있는 그림이 실제와 얼마나 다른지 드러납니다.

한 달 동안 부풀어 오른 산

세인트헬렌스산이 조용했던 것은 아닙니다. 3월 20일, 규모 4.2의 지진이 산 아래에서 감지되면서 잠들어 있던 화산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두 달 동안 크고 작은 지진이 끊이지 않았고, 산 정상 부근에서는 작은 증기 분화가 반복해서 일어났습니다. 화산학자들에게 더 눈에 띄었던 변화는 따로 있었습니다. 지하에서 밀고 올라오던 마그마가 화산의 북쪽 사면을 거의 150m 밖으로 밀어냈던 것입니다.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물집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었던 셈입니다.

측량팀은 매일 이 돌출부의 이동 속도를 재고, 이산화황 배출량을 확인하고, 지표면 온도를 기록했습니다. 필요한 데이터는 이미 다 모이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데이터가 알려주지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돌출부는 하루하루 조금씩 부풀었을 뿐, 5월 18일 아침이 다른 날과 다르다는 신호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화산은 마치 오랫동안 서서히 부푼 풍선처럼 보였고, 사람들은 언젠가 그 풍선이 견디지 못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다만 그 순간을 무엇이 결정하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압력이 쌓이면 터진다”는 설명의 빈틈

여기서 많은 사람이 떠올리는 그림은 압력솥이나 흔들어 놓은 탄산음료 캔입니다. 안에서 압력이 계속 늘어나다가 뚜껑이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는 순간 터진다는 설명입니다. 틀린 그림은 아닙니다. 마그마 속에는 수증기와 이산화탄소 같은 휘발성 기체가 녹아 있고, 이 기체가 빠져나가려는 힘이 분화의 중요한 동력인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이 설명만으로는 세인트헬렌스산에서 벌어진 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마그마 방은 수백, 수천 년 동안 엄청난 압력을 품은 채로도 폭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압력 자체는 늘 존재하고 있었고, 그것만으로 “왜 하필 그날, 그 순간”이었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압력솥의 비유가 놓치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압력솥은 내부 압력이 임계점을 넘을 때 터지지만, 세인트헬렌스산의 마그마는 압력이 서서히 늘어나서 한계를 넘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가 갑자기, 짧은 순간에 바깥에서 그 압력의 균형을 깨뜨렸습니다.

산사태가 뚜껑을 여는 순간

그 답은 지진이 일으킨 산사태에 있었습니다. 부풀어 오른 북쪽 사면이 무너져 내리면서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했고, 이 산사태가 마그마를 가로막고 있던 암반을 걷어내면서 산이 폭발했습니다. 즉 마그마의 압력이 갑자기 더 세진 것이 아니라, 마그마를 억누르고 있던 뚜껑, 즉 산의 암반 자체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존스턴이 예상했던 그대로, 마그마가 산체를 계속 밀어 올리다가 산이 변형되며 북쪽 사면이 무너지자 급격한 감압이 일어나며 폭발이 터져 나왔습니다.

탄산음료 캔을 흔든 다음, 서서히 여는 것과 단숨에 뚜껑을 뜯어내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워집니다. 천천히 열면 기체가 조금씩 빠져나가며 잦아들지만, 단숨에 열면 안에 녹아 있던 기체가 한꺼번에 거품으로 터져 나옵니다. 세인트헬렌스산에서 일어난 일이 바로 이 순간적인 감압이었습니다. 억누르던 암반이 사라지자 마그마 속에 녹아 있던 기체가 한순간에 빠져나오며 부피가 폭발적으로 팽창했고, 그 힘이 산의 옆구리를 그대로 날려버렸습니다. 이렇게 산사태가 먼저 일어나고 그로 인한 감압이 폭발을 촉발하는 방식은, 이 사건 이전까지 화산학자들이 직접 관측한 적이 없는 유형이었습니다. 세인트헬렌스산의 비극은 이후 전 세계 화산 감시 방식을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왜 어떤 화산은 흐르고, 어떤 화산은 터지는가

같은 마그마라도 모두 이렇게 격렬하게 터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와이의 화산을 떠올려 보면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그곳의 용암은 붉게 빛나며 천천히 흘러내릴 뿐, 세인트헬렌스산처럼 산 전체를 날려버리지 않습니다. 두 화산의 차이는 마그마에 녹아 있는 이산화규소의 양에 있습니다. 이산화규소 사슬이 발달하지 않은 염기성 마그마는 점성이 낮아 넓게 퍼져 흐르며, 하와이섬과 아이슬란드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점성이 낮다는 것은 기체가 마그마 속에서 비교적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기체가 서서히 빠져나가는 화산은 조용히 흐르는 용암을 만듭니다.

반대로 이산화규소 함량이 높은 안산암질, 데이사이트질 마그마는 걸쭉하고 끈끈합니다. 규산염 비율이 높아 점성이 높은 마그마나 물, 빙하와 접촉한 마그마는 강력한 폭발을 수반하며, 그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세인트헬렌스와 필리핀의 피나투보입니다. 기체가 마그마 속에 갇힌 채 빠져나가지 못하다가, 압력이 급격히 낮아지는 순간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걸쭉한 꿀 속에 공기 방울을 가두는 모습과, 묽은 물속에서 공기 방울이 자유롭게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비교해 보면 이 차이를 쉽게 그려볼 수 있습니다. 화산이 조용한지 격렬한지를 가르는 첫 번째 요인은 마그마의 화학적 성질, 그중에서도 점성입니다.

판이 마그마의 성격을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왜 어떤 지역의 마그마는 끈끈하고, 어떤 지역의 마그마는 묽을까요. 그 답은 지각판이 놓인 위치에 있습니다. 세인트헬렌스산과 피나투보산은 모두 섭입대, 즉 하나의 지각판이 다른 판 아래로 파고드는 경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다 밑 판이 가라앉으면서 물을 잔뜩 머금은 채 녹고, 그 위에 놓인 대륙 지각까지 함께 녹아 들어가면서 이산화규소가 풍부하고 물기가 많은 끈끈한 마그마가 만들어집니다. 이런 마그마는 지표면 가까이 올라올수록 압력이 낮아지며 녹아 있던 물이 기체로 바뀌려 하지만, 점성 때문에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 채 갇혀 있게 됩니다.

반면 하와이나 아이슬란드처럼 맨틀 깊은 곳에서 곧바로 솟아오르는 열점, 혹은 판과 판이 벌어지는 곳에서는 지각을 거의 거치지 않은 비교적 순수한 마그마가 올라옵니다. 이산화규소 함량이 낮고 물기도 적어 기체가 자유롭게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태평양을 둘러싼 이른바 ‘불의 고리’에 유독 격렬한 화산이 몰려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 지역 대부분이 섭입대이기 때문입니다. 화산의 성격은 그 화산이 위치한 지각판의 경계 유형에서부터 이미 정해져 있는 셈입니다.

피나투보, 같은 신호를 다르게 읽다

세인트헬렌스산의 비극은 11년 뒤 다른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1991년, 필리핀의 피나투보산에서도 지진이 잦아지고 화산 가스 방출량이 늘어나는 전조가 나타났습니다. 1991년 3월 중순부터 지진이 감지되기 시작했고, 6월 초 용암돔이 형성되며 경보 단계가 격상되었습니다. 세인트헬렌스산에서 얻은 교훈, 즉 산사태나 사면 변형이 급격한 감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을 갖춘 화산학자들은 이번에는 신호를 다르게 읽었습니다. 분화 며칠 전 이루어진 대피는 수만 명의 생명을 구했으며, 화산학과 분화 예측의 큰 성공 사례로 평가받았습니다.

물론 완벽한 결말은 아니었습니다. 피나투보의 1991년 6월 15일 분화는 화산 폭발 지수 6등급으로, 1912년 알래스카 노바룹타산 분화 이후 20세기 두 번째로 큰 규모였습니다. 공교롭게도 태풍이 근접하며 물기를 머금은 화산재가 지붕을 무너뜨려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사전 대피가 없었다면 희생자는 훨씬 많았을 것이라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입니다. 같은 자연 현상이라도, 그 이면의 방아쇠를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무전이 남긴 것

존스턴이 남긴 마지막 말은 개인의 죽음으로만 남지 않았습니다. 그가 관측하던 순간은 산사태가 마그마를 가두던 뚜껑을 벗겨내고, 그 즉시 급격한 감압이 폭발을 일으키는 과정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상세히 기록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전 세계 화산 감시 체계는 지진과 가스 배출량뿐 아니라 산의 형태 변화, 사면의 안정성까지 함께 살피는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피나투보에서 수만 명이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1년 전 한 관측소에서 끊어진 무전 신호가 놓여 있었습니다.

화산은 압력이 쌓이다가 어느 순간 견디지 못해 터지는 단순한 그릇이 아닙니다. 마그마의 화학적 성질과 그것을 가두고 있는 암반, 그리고 그 암반이 무너지는 짧은 순간이 함께 맞물려야 폭발이 일어납니다. 세인트헬렌스산의 사면이 무너지던 그 몇 초가, 오늘날 화산학이 화산을 바라보는 방식 전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화산 폭발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나요?

지진 활동, 지표면 변형, 가스 방출량 같은 전조 현상을 종합하면 대략적인 위험 시기를 좁힐 수 있습니다. 피나투보 사례처럼 며칠에서 몇 주 전 대피가 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세인트헬렌스산처럼 산사태 등 돌발적인 요인이 폭발의 정확한 시점을 결정하는 경우, 분 단위나 시간 단위의 정밀한 예측은 여전히 매우 어렵습니다.

세인트헬렌스산은 지금도 위험한가요?

1980년 이후에도 세인트헬렌스산 화산 지대에서는 소규모 분화와 용암돔 형성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이 화산을 지금도 활발히 감시하고 있는 활화산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최신 활동 정보는 미국 지질조사국(USGS) 공식 자료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화산 폭발 지수(VEI)란 무엇인가요?

화산 폭발 지수는 분출물의 양과 분연주의 높이를 기준으로 폭발의 규모를 0부터 8까지 나누는 척도입니다. 세인트헬렌스산의 1980년 분화는 5등급, 피나투보산의 1991년 분화는 6등급으로 분류되며, 숫자가 하나 올라갈 때마다 분출량은 대략 10배씩 늘어납니다.

왜 하와이 화산은 폭발적이지 않나요?

하와이는 지각판의 경계가 아니라 맨틀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곧바로 올라오는 열점 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마그마는 이산화규소 함량이 낮고 점성이 낮아 기체가 쉽게 빠져나가기 때문에, 폭발적으로 터지기보다 용암류의 형태로 비교적 조용히 흘러내립니다.

한국 주변에도 폭발 위험이 있는 화산이 있나요?

백두산이 대표적입니다. 946년 무렵 일어난 것으로 알려진 분화는 역대 가장 강력한 분화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큼 큰 규모였다고 전해집니다. 현재는 뚜렷한 분화 징후 없이 관측되고 있지만, 한국과 중국 양측 연구 기관이 지속적으로 지진 활동과 지표 변화를 감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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