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는 왜 잊을 만하면 반복될까?
2008년 9월 14일 일요일 밤, 뉴욕의 한 구조조정 전문가는 거실 소파에 앉아 미식축구 경기를 보고 있었습니다. 전화벨이 계속 울렸지만 받지 않았습니다. 주말 밤에 걸려오는 업무 전화는 대개 그리 급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화를 건 쪽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리먼 브라더스 이사회는 그와 통화가 될 때까지 회의실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밤 10시 45분, 마침내 수화기를 든 그에게 이사회는 짧게 말했습니다. 내일 아침 출근해서 회사를 맡아 달라고 말입니다.
158년 역사의 투자은행이 무너지기 열두 시간 전이었습니다. 다음 날 리먼 브라더스는 6,000억 달러가 넘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을 신청했습니다. 세계 금융시장은 그 후 몇 달간 자유낙하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정말 이상한 부분은 파산 자체가 아닙니다. 이상한 부분은, 이런 붕괴가 처음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1929년에도, 1997년 아시아 각국에서도, 2000년 닷컴 버블 때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었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이미 여러 번 반복된 실수를, 왜 매번 다시 저지르는 것일까요.
경고는 이미 있었다
2008년 위기가 터지기 전, 아무도 경고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몇몇 헤지펀드 매니저와 경제학자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부실하다는 것을 수년 전부터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주택 가격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 위에 지어진 금융상품들이 위태롭다는 분석도 학계에 존재했습니다.
문제는 이 경고들이 소수의 목소리에 머물렀다는 점입니다. 은행의 트레이더는 분기 실적에 따라 보너스를 받았고, 신용평가사는 상품을 발행한 은행에게서 수수료를 받으며 등급을 매겼습니다. 규제 당국은 시장이 스스로 위험을 관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위험을 못 본 것이 아니라, 위험을 무시할 이유를 가진 사람이 너무 많았던 셈입니다.
여기서 첫 번째 실마리가 드러납니다. 금융위기는 정보 부족의 문제라기보다, 누가 위험을 감수하고 누가 그 대가를 치르는지가 어긋나 있을 때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어긋남 자체는 왜 시간이 지나면 자꾸 다시 생겨나는 것일까요.
안정은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이 질문에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은 사람은 미국의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였습니다. 민스키는 199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학계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인물이었지만,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며 그의 이론은 뒤늦게 널리 인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민스키가 제시한 금융불안정성 가설의 핵심은 간단하면서도 낯설게 들립니다. 경제가 오랫동안 안정적일수록, 그 안정성이 다음 위기의 씨앗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설명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경기가 순조롭게 돌아가는 시기가 이어지면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해도 별문제가 없었다는 경험을 쌓게 됩니다. 대출을 받아 투자한 사람도, 그 돈을 빌려준 은행도 손실 없이 넘어갔다는 기억이 반복되면, 다음번에는 조금 더 대담해집니다. 민스키는 이 흐름을 세 단계로 나누었습니다. 이자와 원금을 모두 갚을 수 있는 건전한 차입이 이루어지는 단계, 이자만 갚고 원금 상환은 미래로 미루는 투기적 차입이 늘어나는 단계, 그리고 자산 가격이 계속 오른다는 전제 아래 새 빚으로 옛 빚을 막는 폰지형 차입이 퍼지는 단계입니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자산 가격 상승이 멈추는 순간,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진 이들이 우량한 자산까지 팔아치우기 시작합니다. 이 임계점을 훗날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따 민스키 모멘트라 부르게 됩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이 과정을 이끄는 힘이 탐욕이나 사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위험을 감수한 만큼 보상을 받아 왔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경험의 축적이 그 힘입니다. 개인이 내리는 각각의 판단은 그 순간에는 이상하지 않습니다. 다만 수많은 사람이 같은 판단을 같은 시기에 내리면서, 시스템 전체의 위험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조용히 쌓여갑니다.
튤립부터 서브프라임까지, 반복되는 얼굴
이 패턴이 특정 시대나 특정 자산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은, 몇 가지 사례를 나란히 놓아 보면 분명해집니다.
| 사건 | 시기 | 부풀어 오른 자산 | 붕괴의 방아쇠 |
|---|---|---|---|
| 튤립 파동 | 1630년대 네덜란드 | 튤립 구근 | 한 경매의 유찰 |
| 대공황 | 1929년 미국 | 주식 | 신용거래 증거금 부족 |
| 아시아 금융위기 | 1997년 동아시아 | 부동산·기업 부채 | 태국 바트화 폭락 |
| 닷컴 버블 | 2000년 미국 | 인터넷 기업 주가 | 실적 없는 기업의 파산 |
| 글로벌 금융위기 | 2008년 전 세계 | 주택담보대출 파생상품 | 리먼 브라더스 파산 |
대상은 구근에서 주식으로, 주식에서 부동산으로 계속 바뀌었지만 구조는 놀라울 만큼 비슷합니다. 값이 오른다는 믿음, 그 믿음을 근거로 늘어나는 빚, 그리고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 한꺼번에 몰려드는 매도세입니다. 사람들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자산의 종류가 바뀔 때마다 이전 위기의 교훈이 낡은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튤립을 사던 사람의 실수가 부동산을 사는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고는, 그 순간에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기억은 왜 오래가지 못할까
경고가 있었는데도, 패턴이 이렇게 뚜렷한데도 왜 다음 위기를 막지 못하는지 궁금해질 차례입니다. 여기에는 개인의 판단력과는 무관한, 조금 더 구조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대교체입니다. 큰 위기를 직접 겪고 그 공포를 몸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시장을 떠납니다. 은퇴하거나, 이직하거나, 더 이상 의사결정 라인에 있지 않게 됩니다. 그 자리를 채우는 사람들은 위기를 통계와 사례 연구로만 배운 세대입니다. 지식으로 아는 것과 그 시절의 공포를 몸으로 겪은 것은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집니다.
다른 하나는 규제의 속성입니다. 위기 직후에는 강도 높은 규제가 도입됩니다. 은행의 자기자본 요건이 강화되고, 위험한 파생상품 거래에 제한이 걸립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경기가 다시 좋아지면, 이 규제들은 성장을 가로막는 낡은 족쇄로 취급받기 시작합니다.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위기의 기억이 옅어질수록 점점 커집니다. 결국 위기를 막기 위해 만든 장치가 다음 호황기에 조금씩 걷혀 나가는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금융 상품 자체의 진화가 있습니다. 규제는 대개 지난 위기를 일으킨 특정 상품을 겨냥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다음 위기는 규제가 미처 정의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상품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08년 위기를 계기로 강화된 은행 규제 이후, 위험을 감수하는 역할의 상당 부분이 은행 바깥의 그림자 금융이나 사모 대출 시장으로 옮겨갔다는 지적이 최근 여러 경제 분석에서 나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규제는 지나간 전쟁을 준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음 위기는 다른 옷을 입고 온다
그렇다면 앞으로 벌어질 위기를 미리 알아볼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완전히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쉽지 않은 이유는 분명합니다. 다음 위기는 지난 위기와 같은 얼굴로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2008년 이후 사람들은 부동산 담보 파생상품을 경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다음 위험 신호는 국가 부채, 암호자산, 혹은 은행 시스템 바깥에서 빠르게 몸집을 키운 대출 시장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위험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위험이 감시가 소홀한 쪽으로 자리를 옮겼을 뿐입니다. 이런 이동은 위기가 지나갈 때마다 거의 예외 없이 관찰되는 흐름입니다.
민스키의 이론이 지금도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의 모델은 특정 자산이나 특정 시대를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안정이 어떻게 스스로 불안정을 낳는지를 보여주는 구조를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대상이 튤립이든 주택담보대출이든 새로운 디지털 자산이든, 그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그 전화벨 소리
2008년 9월 14일 밤, 소파에 앉아 전화벨을 무시하던 그 구조조정 전문가를 다시 떠올려 봅니다. 그가 전화를 받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합니다. 주말 저녁의 전화가 세계 경제를 뒤흔들 사건의 시작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보면 그날 무시당한 전화벨은 이 이야기 전체의 축소판이기도 합니다. 위험은 언제나 평범한 하루의 얼굴을 하고 다가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체로,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민스키 모멘트란 정확히 무엇인가요?
과도한 부채로 이어진 호황이 끝나고, 채무자들이 빚을 갚기 위해 우량 자산까지 팔아치우면서 자산 가격이 급락하고 금융 시스템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시점을 가리킵니다.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의 금융불안정성 가설에서 나온 개념으로,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 설명에 처음 널리 쓰인 뒤 2008년 위기를 계기로 대중적으로 알려졌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리먼 브라더스 하나 때문에 일어난 건가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은 위기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결정적 계기였지만, 원인 그 자체는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앞서 미국 주택 가격이 오랫동안 상승할 것이라는 전제 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이를 기반으로 한 복잡한 파생상품이 금융권 전반에 퍼져 있었고, 주택 가격이 꺾이면서 이 상품들의 부실이 연쇄적으로 드러난 결과였습니다. 리먼은 이 연쇄 반응이 통제 불능 상태로 넘어가는 상징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금융위기는 몇 년 주기로 반복되나요?
정해진 주기는 없습니다. 다만 여러 경제사학자들은 큰 위기 이후 사람들의 경계심이 옅어지고 규제가 완화되기까지 대략 한 세대, 즉 20년에서 30년 정도가 걸린다는 관찰을 공유합니다. 이는 통계적 법칙이라기보다, 위기를 직접 겪은 세대가 의사결정권에서 물러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맞물려 있다는 해석이 많습니다.
다음 금융위기가 어디서 시작될지 예측할 수 있나요?
정확한 예측은 어렵습니다. 다만 지난 위기 이후 규제가 집중된 영역보다,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빠르게 성장한 시장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것이 반복적으로 확인된 교훈입니다. 은행 규제가 강화된 이후 그림자 금융이나 비은행 대출 시장의 성장 속도가 주목받아 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입니다.
튤립 파동은 실제로 그렇게 심각한 경제위기였나요?
1630년대 네덜란드의 튤립 파동이 당시 사회 전체를 흔든 대규모 경제위기였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습니다. 튤립 구근 가격이 극적으로 오르내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여파가 네덜란드 경제 전반에 미친 영향은 후대에 다소 과장되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다만 자산 가격이 실질 가치와 무관하게 부풀었다가 급락한 사례로서, 이후 여러 경제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상징적 사례로 자리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