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사회를 상징하는 도시

사회갈등은 왜 점점 심해질까? — 우리는 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나

1960년, 미국의 한 여론조사 기관이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의 자녀가 반대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당시 이 질문에 “싫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5%도 되지 않았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든 공화당 지지자든,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자녀의 배우자를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뜻입니다. 정치는 그저 여러 의견 중 하나였고, 사람들은 정치적 견해와 무관하게 이웃과 어울리고, 친구를 사귀고, 자녀를 결혼시켰습니다.

그런데 2020년, 같은 질문을 다시 던졌습니다. 이번에는 응답자의 40% 가까이가 “반대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과 자녀가 결혼하는 것이 싫다”고 답했습니다. 60년 사이에 그 숫자는 거의 열 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같은 기간 동안, 미국 사회의 실제 정책적 견해차—세금을 얼마나 걷어야 하는지, 복지 예산을 얼마나 늘려야 하는지 같은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의견 차이—는 크게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다르게 생각하는 정도는 그대로인데, 서로에 대한 반감과 혐오는 폭발적으로 커진 것입니다.

이 현상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를 ‘정서적 양극화(affective polarization)’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상대방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이라는 존재 자체를 싫어하게 되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이 현상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지구 곳곳에서 비슷한 패턴이 관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예전보다 더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걸까요?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걸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리는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 마음을 둘러싼 세상이 지난 수십 년간 얼마나 극적으로 바뀌었는지를 함께 들여다봐야 합니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사회갈등이 심해진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들이 서로 싸운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한 사회가 함께 문제를 풀어나갈 능력을 잃어간다는 신호입니다.

기후 변화, 저출생, 연금 개혁처럼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문제들은 모두 폭넓은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갈등이 격화되면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상대 진영은 “저건 우리를 공격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하게 되고, 타협은 배신으로, 대화는 굴복으로 여겨집니다. 결국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채 문제만 쌓여갑니다.

더 깊은 문제도 있습니다. 갈등이 심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불안을 겪습니다. 명절에 정치 이야기를 꺼냈다가 가족과 얼굴을 붉힌 경험, 온라인에서 낯선 사람과 격렬하게 다툰 경험, 특정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워진 경험—이런 것들은 개인의 정신 건강과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서서히 갉아먹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교양이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어떤 사회에서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실용적인 질문입니다.

역사적·사회적 배경

인간 사회에 갈등이 없었던 시대는 없습니다. 고대 아테네에서도 민주파와 과두파는 서로를 국가의 적이라 불렀고, 조선시대 붕당정치에서도 노론과 소론은 상대 당파를 역적으로 몰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갈등 자체는 인류의 오래된 동반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갈등은 무엇이 다를까요. 핵심은 갈등의 ‘양’이 아니라 갈등이 퍼지고 증폭되는 ‘방식’에 있습니다.

20세기 중반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보를 제한된 몇 개의 창구를 통해서만 얻었습니다. 미국인이라면 저녁 6시 반, 세 개 남짓한 방송사 뉴스 중 하나를 온 가족이 함께 시청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아침저녁으로 신문 한두 종을 읽고, 저녁 9시 뉴스를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 시절에는 좌우를 막론하고 사실상 같은 정보, 같은 사건, 같은 어휘로 세상을 이해했습니다. 의견은 갈려도 최소한 ‘어떤 사실에 대해’ 의견이 갈리는지는 공유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 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케이블 뉴스의 등장부터였습니다. 미국의 폭스뉴스, MSNBC 같은 채널들은 특정 정치 성향의 시청자를 겨냥한 뉴스를 24시간 내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이 흐름은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갑니다. 이제 사람들은 뉴스를 ‘찾아서’ 보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골라주는’ 뉴스를 봅니다. 그리고 그 알고리즘은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용자가 화면을 오래 붙잡고 있게 만들기 위해 설계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글의 핵심 질문에 다가서게 됩니다. 왜 하필 ‘화나게 만드는’ 콘텐츠가 우리를 오래 붙잡아둘까요.

갈등은 왜, 어떻게 커지는가

왜: 인간의 뇌는 원래 편을 가르도록 되어 있다

1970년대, 영국의 심리학자 앙리 타지펠은 기묘한 실험을 했습니다. 그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화면에 뜬 점의 개수를 추측하게 한 뒤, 순전히 무작위로 “당신은 점을 많이 추측하는 그룹입니다” 혹은 “적게 추측하는 그룹입니다”라고 나눠 이름표를 붙였습니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완전히 자의적인 분류였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속한 그룹의 사람에게는 더 많은 보상을 주고, 다른 그룹 사람에게는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더 적은 보상을 주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룹을 나누는 기준에 어떤 실질적 의미도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이 실험이 보여주는 것은 인간의 뇌가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데 필요한 기준이 생각보다 훨씬 낮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사회정체성 이론’이라 부릅니다. 인간은 진화적으로 작은 무리를 지어 생존해왔고, 그 결과 자신이 속한 집단을 편애하고 낯선 집단을 경계하는 본능이 뇌 깊숙이 새겨졌습니다. 원래는 부족과 부족 사이에서 작동하던 이 본능이, 오늘날에는 정당, 지역, 세대, 성별이라는 새로운 ‘부족’을 만나 재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알고리즘과 분노의 경제학

문제는 이 오래된 본능이 최신 기술과 만났을 때 벌어집니다.

2017년, 예일대학교의 심리학자 몰리 크로켓 연구팀은 소셜미디어에서 확산되는 게시물 수백만 건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도덕적 분노를 담은 단어—”부끄럽다”, “역겹다”, “용납할 수 없다” 같은 표현—가 포함된 게시물은 그렇지 않은 게시물보다 훨씬 더 멀리, 더 빠르게 퍼진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사람들은 차분한 설명보다 분노에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공유하고, 댓글을 남깁니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바로 이 반응을 학습합니다. 어떤 콘텐츠가 사용자를 화면 앞에 더 오래 붙잡아두는지를 계속 실험하고, 그 결과 분노와 갈등을 유발하는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노출시킵니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사용자가 화를 내든 기뻐하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용자가 앱을 닫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확증 편향’이라는 심리적 습성도 작동합니다. 인간은 원래 자신의 기존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를 더 쉽게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알고리즘은 바로 이 습성을 이용해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즉 이미 갖고 있던 생각을 강화해주는 콘텐츠를 계속 보여줍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필터 버블’이라는 정보의 거품 안에 갇히게 됩니다. 거품 안에서는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접할 기회 자체가 점점 줄어듭니다.

스탠퍼드대학교의 정치학자 샨토 아이옌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이 상대 진영에 대해 실제보다 훨씬 더 극단적이라고 ‘오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공화당 지지자들은 민주당 지지자 중 동성애자가 얼마나 많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실제 비율의 세 배 넘게 과대추정했고, 민주당 지지자들 역시 공화당 지지자 중 부유층 비율을 실제보다 훨씬 높게 짐작했습니다. 즉 우리는 상대방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가 아니라, 미디어와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가장 극단적인 예외’를 상대방 전체의 모습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뢰가 무너지고, 대화가 사라진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나타나는 첫 번째 결과는 ‘신뢰의 붕괴’입니다. 상대 진영을 실제보다 훨씬 나쁘게 오해하게 되면, 그 진영이 하는 모든 주장은 선의로 해석되지 않습니다. 상대가 세금 감면을 주장하면 “부자들을 위한 술수”로, 복지 확대를 주장하면 “표를 얻기 위한 선동”으로 읽힙니다. 같은 정책이라도 누가 제안했느냐에 따라 지지와 반대가 갈리는 현상, 정치학에서는 이를 ‘정당 신호 효과’라 부릅니다.

두 번째 결과는 ‘대화의 회피’입니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정치 성향이 다른 가족과 명절 식사 자리에서 정치 이야기를 피한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늘어났습니다.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명절마다 “정치 얘기, 젠더 얘기는 절대 하지 말자”는 암묵적 규칙이 자리잡은 가정이 늘고 있습니다. 갈등을 피하려는 이 침묵은 얼핏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를 이해할 기회 자체를 차단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세 번째 결과는 더 근본적입니다. 바로 ‘제도에 대한 신뢰 하락’입니다. 언론, 국회, 사법부처럼 사회 전체가 공유해야 할 심판자 역할의 기관들조차 “저쪽 편”으로 낙인찍히기 시작하면, 사회는 공정한 결과를 함께 받아들일 기반 자체를 잃어버립니다. 선거에 패배한 쪽이 결과에 불복하고, 법원의 판결을 “정치적 판결”이라 부르는 현상은 바로 이 신뢰 붕괴의 증상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여기까지 오면 한 가지가 분명해집니다. 우리가 느끼는 극심한 갈등의 상당 부분은 ‘실제 생각의 차이’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오해의 증폭’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희망적인 소식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오해는—적어도 이론적으로는—풀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여러 나라에서 진행된 실험들은 이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서로 다른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직접 얼굴을 맞대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을 때, 참가자들의 상대 진영에 대한 반감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상대방을 추상적인 ‘진영’이 아니라 자녀를 걱정하고 생계를 고민하는 한 명의 개인으로 마주하는 순간, 뇌 속에서 작동하던 ‘우리 대 그들’의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실제 사례

미국의 정서적 양극화: 앞서 소개한 연구가 보여주듯, 미국은 지난 수십 년간 정책적 견해차보다 상대 진영에 대한 감정적 반감이 훨씬 빠르게 커진 대표적 사례입니다. 2021년 1월 6일 발생한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사태는 이러한 정서적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으로 꼽힙니다.

한국의 세대·젠더 갈등: 한국에서는 2010년대 후반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세대 간, 성별 간 갈등이 뚜렷하게 가시화되었습니다. 특정 사건이 발생하면 순식간에 특정 온라인 공간에서 논쟁이 폭발하고, 언론과 정치권이 이를 다시 확대 재생산하는 패턴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갈등의 배경에 청년 세대의 취업난,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인한 자산 격차, 저출생으로 대표되는 인구 구조 변화 등 실질적인 자원 경쟁 문제가 함께 얽혀 있다고 분석합니다.

핀란드의 팩트체크 교육: 반대로 갈등 완화의 사례도 있습니다. 핀란드는 2014년부터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미디어 리터러시와 허위정보 판별 교육을 정식으로 포함시켰습니다. 학생들에게 어릴 때부터 “이 정보의 출처는 어디인가”, “이 게시물은 나를 화나게 만들려고 설계된 것은 아닌가”를 스스로 질문하도록 훈련시킨 결과, 핀란드는 유럽에서 허위정보에 대한 사회적 저항력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과거의 갈등과 오늘의 갈등

구분20세기 중반의 사회갈등오늘날의 사회갈등
정보 창구소수의 신문·방송, 온 가족이 공유개인 맞춤형 알고리즘 피드
정보 공유 여부같은 사실을 두고 의견이 갈림서로 다른 사실 체계 자체가 분리됨
갈등 확산 속도지역 공동체, 인쇄물 중심으로 완만소셜미디어를 통해 몇 시간 내 전국 확산
상대 진영 인식이웃, 직장 동료 등 실제 개인으로 경험온라인에서 본 가장 극단적인 사례로 일반화
갈등의 동력실제 이해관계의 충돌실제 이해관계 + 알고리즘에 의한 정서적 증폭
대화의 장마을회관, 직장, 가정 등 대면 공간익명성이 보장된 온라인 공간 비중 확대

이 표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정보 공유 여부’입니다. 과거의 갈등은 최소한 같은 사실 위에서 벌어졌지만, 오늘날의 갈등은 애초에 서로 다른 사실 체계, 다른 세계관 위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갈등이 유독 풀기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핵심 정리

  • 인간은 진화적으로 ‘우리’와 ‘그들’을 나누도록 설계된 존재이며, 이 본능은 아주 사소한 기준으로도 쉽게 작동한다.
  •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 분노와 갈등을 유발하는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노출시킨다.
  • 이로 인해 사람들은 상대 진영의 실제 모습보다 훨씬 극단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는 ‘정서적 양극화’를 겪는다.
  • 오늘날의 갈등은 실제 견해차보다 서로에 대한 ‘오해의 증폭’에서 비롯되는 비중이 크며, 이는 곧 해결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대면 접촉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실제로 갈등 완화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 방법이다.

오늘의 한 문장

우리를 갈라놓는 것은 서로 다른 생각이 아니라, 서로를 오해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일지도 모릅니다.

FAQ

Q1. 사회갈등이 심해지는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가요? 단일한 원인은 없지만, 학계에서는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에 의한 정서적 양극화, 경제적 불평등 심화, 세대 간 자원 경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봅니다. 특히 알고리즘이 분노를 유발하는 콘텐츠를 우선 노출시키는 구조가 최근 심화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됩니다.

Q2. 정서적 양극화란 정확히 무엇인가요? 정책이나 이슈에 대한 실제 견해 차이가 아니라, 상대 진영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감정적 반감과 불신이 커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실제 의견 차이는 크지 않아도 상대에 대한 혐오는 커질 수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Q3. 소셜미디어를 끊으면 사회갈등에 대한 인식이 줄어드나요? 여러 실험 연구에서 일정 기간 소셜미디어 사용을 중단한 참가자들의 정치적 반감과 불안 수준이 낮아진 결과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 다만 이는 개인 차원의 완화책이며, 구조적 원인인 알고리즘 설계나 경제적 불평등 문제까지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Q4. 한국의 사회갈등은 다른 나라보다 심각한 편인가요? 국제 비교 조사에서 한국은 세대, 젠더, 정치 성향에 따른 갈등 인식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편입니다. 다만 이는 단일 원인이 아니라 빠른 사회 변화 속도, 청년층의 경제적 불안, 온라인 여론 형성 구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됩니다.

Q5. 사회갈등을 줄이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나요? 연구에 따르면 상대 진영 사람을 추상적 집단이 아닌 개별적 존재로 직접 만나 대화하는 경험, 정보의 출처를 확인하는 습관, 자신의 확증 편향을 의식적으로 점검하는 태도가 갈등 완화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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