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며 희미해지는 행복

행복은 왜 오래가지 않을까 – 쾌락의 쳇바퀴에 관하여

1978년, 심리학자 필립 브릭먼과 도널드 캠벨은 이상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쪽은 복권에 당첨되어 하루아침에 수십만 달러를 손에 쥔 사람들이었고, 다른 한쪽은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다시는 걷지 못하게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결과는 뻔해 보입니다. 복권 당첨자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고, 사고를 당한 사람은 절망 속에 살아갈 것이라고요.

그런데 몇 달이 지난 뒤 다시 조사해 보니, 놀라운 일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복권 당첨자들의 행복도는 당첨 전 수준으로 거의 되돌아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일부는 예전보다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덜 느낀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하반신 마비를 겪은 사람들 역시, 시간이 지나자 사고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의 행복감을 되찾고 있었습니다. 인생을 뒤바꿀 만한 최고의 행운도, 최악의 불행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던 겁니다.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이번 시험만 잘 보면”, “저 차만 사면”, “저 사람이랑 사귀기만 하면” 행복해질 거라고요. 그리고 실제로 원하는 걸 손에 넣었을 때, 잠깐은 정말 행복합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며칠, 길어야 몇 주가 지나면 그 벅찬 감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우리는 또다시 “그다음 것”을 찾아 나섭니다. 왜 우리의 행복은 이렇게 짧게 끝나버릴까요? 이것은 단순히 의지가 부족하거나 욕심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여기에는 수백만 년에 걸쳐 우리 뇌에 새겨진, 아주 정교하고도 냉정한 이유가 숨어 있습니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인생의 거의 모든 중요한 결정을 “이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라는 기대 위에서 내리기 때문입니다. 대학 전공을 고를 때도, 직장을 옮길 때도, 결혼을 결심할 때도, 집을 살 때도 우리는 이 선택이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데 만약 행복이라는 감정 자체가 원래 오래 지속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애초에 잘못된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무엇을 손에 넣어야 행복할까”가 아니라 “행복이라는 감정은 원래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먼저 이해해야, 헛되이 쳇바퀴만 돌리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인생에서 돈과 시간을 쓰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행복을 처음 “측정”하려 한 사람들

행복은 오랫동안 철학자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에우다이모니아’, 즉 덕성을 실현하는 삶의 결과라고 보았고, 스토아 철학자들은 외부 조건에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행복이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까지 심리학은 행복을 과학적으로 다루기를 주저했습니다. 너무 주관적이고, 측정하기 어렵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 흐름을 바꾼 것이 바로 앞서 소개한 브릭먼과 캠벨의 연구, 그리고 이들이 제안한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 이론이었습니다. 사람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시간이 지나면 그 감정 상태에 적응하여, 결국 자신만의 고유한 ‘행복의 기준점(happiness set point)’으로 돌아간다는 개념입니다. 마치 러닝머신 위에서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제자리인 것처럼, 우리는 더 좋은 것을 손에 넣기 위해 계속 달리지만 결국 행복의 위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후 심리학자 소냐 류보머스키는 수백 건의 쌍둥이 연구와 종단 연구를 종합해 흥미로운 비율을 제시했습니다. 사람의 행복 수준 중 약 50%는 타고난 유전적 기질에 의해 결정되고, 약 10%만이 우리가 흔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조건(돈, 외모, 거주지, 직업 등)에 좌우되며, 나머지 40%는 우리가 매일 실천하는 의도적인 활동과 사고방식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 숫자가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우리가 “이것만 있으면 행복해질 것”이라 믿는 외부 조건들이, 실제로는 우리 행복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설명한다는 사실입니다.

행복은 왜, 어떻게 짧게 끝나도록 만들어졌나

왜: 진화는 만족이 아니라 생존을 원했다

여기서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진화가 우리에게 원한 것은 ‘행복한 삶’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냉정하게 들리지만, 이것이 핵심입니다. 만약 우리 조상 중 누군가가 사냥에 성공해 배불리 먹은 뒤 그 만족감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음 끼니를 구하러 나가지 않았을 것이고, 결국 도태되었을 겁니다. 반대로 배부름의 만족이 금방 사라지고 다시 배고픔과 결핍을 느껴야, 다시 사냥에 나서고, 다시 씨족을 위해 움직이게 됩니다.

행복이나 만족은 목적지가 아니라, 우리를 계속 움직이게 만드는 ‘미끼’에 가깝습니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오래 지속되는 행복감은 오히려 위험합니다. 안주하게 만들고, 더 나은 자원과 짝, 지위를 추구하지 않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뇌는 좋은 일이 생기면 잠깐 강렬한 보상을 주고, 곧바로 그 감정을 거두어들이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어떻게: 도파민과 예측 오류, 그리고 적응의 메커니즘

그렇다면 뇌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 일을 해낼까요. 여기서 중요한 것이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파민을 ‘쾌락 물질’로 알고 있지만, 신경과학자 볼프람 슐츠의 원숭이 실험 이후 밝혀진 사실은 조금 다릅니다. 도파민은 쾌락 그 자체가 아니라, ‘예상보다 더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급증하는 물질입니다. 이것을 ‘보상 예측 오류’라고 부릅니다.

원숭이에게 벨소리를 들려준 뒤 주스를 주는 훈련을 반복하면, 처음에는 주스를 받을 때 도파민이 폭발적으로 분비됩니다. 그런데 훈련이 반복되어 원숭이가 “벨이 울리면 주스가 온다”는 것을 완전히 학습하고 나면, 놀랍게도 도파민은 주스가 아니라 벨소리 자체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예측했던 주스가 실제로 주어지는 순간에는 오히려 도파민 반응이 거의 사라집니다. 이미 예상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 그대로 대입해 보면, 새 차를 계약하고 인도받기까지 설레는 그 기간이 실제로 차를 몰고 다니는 몇 달보다 더 큰 행복감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대’가 만들어내는 도파민이, ‘실현’이 만들어내는 도파민보다 크고, 그마저도 반복되면 예측 가능한 일상이 되어 더 이상 도파민을 자극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입니다. 같은 자극이 반복되면 뇌는 그것을 새로운 ‘기본값’으로 재설정합니다. 처음 연봉이 오르면 몇 달은 날아갈 듯 기쁘지만, 반년쯤 지나면 그 연봉은 그저 ‘내 월급’이 되어버리고, 우리는 또 다른 자극을 찾아 나섭니다.

여기에 더해 심리학자 해리 헬슨이 제안한 ‘적응 수준 이론(adaptation-level theory)’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자신이 최근에 경험한 것과의 상대적 비교를 통해 감정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100만 원을 벌던 사람에게 200만 원은 큰 기쁨이지만, 그 200만 원에 적응하고 나면 이제 200만 원은 ‘평범한 기준’이 되고, 300만 원이 있어야 다시 기쁨을 느낍니다. 기준선 자체가 계속 따라 올라가기 때문에,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왜 계속 쳇바퀴를 돌리는가

이 모든 메커니즘이 합쳐지면 결과는 명확합니다. 우리는 더 좋은 것을 얻어도 금방 적응하고, 적응한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행복을 주지 못하며, 그래서 다시 더 좋은 것을 찾아 나섭니다. 이것이 바로 ‘쾌락의 쳇바퀴’입니다. 문제는 이 쳇바퀴가 물질적 소비뿐 아니라 인간관계, 성취, 지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원하던 회사에 입사해도, 몇 달 뒤엔 또 다른 승진을 바라게 되고, 꿈에 그리던 사람과 연애를 시작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 설렘은 익숙함으로 바뀝니다. 이것은 그 대상이 잘못되었거나 우리가 감사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 시스템이 애초에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여기서 중요한 반전이 있습니다. 쾌락의 쳇바퀴가 ‘나쁜 일’에도 똑같이 작동한다는 사실입니다. 브릭먼과 캠벨의 연구에서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다시 평범한 행복 수준으로 돌아왔던 것처럼, 우리는 큰 실패나 이별, 좌절도 결국 적응해냅니다. 즉, 이 시스템은 우리를 무한한 욕망의 노예로 만드는 동시에, 어떤 불행에도 결국 회복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이 사실을 이해하면, 지금 겪고 있는 고통도 ‘지속되는 형벌’이 아니라 ‘적응되어 갈 하나의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 느끼는 기쁨도 붙잡아두려 애쓰기보다는 흘러가는 대로 두는 편이 낫다는 지혜도 얻게 됩니다.

복권 당첨자와 신제품 스마트폰

브릭먼과 캠벨의 원조 연구 외에도, 쾌락의 쳇바퀴를 보여주는 사례는 우리 주변에 넘쳐납니다. 매년 새로운 스마트폰이 출시될 때마다 며칠씩 줄을 서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새 기기를 손에 넣은 순간의 흥분은 실제로 존재하지만, 대략 2주만 지나도 그 스마트폰은 ‘그냥 내 폰’이 됩니다. 그리고 다음 신제품이 나오면 똑같은 갈망이 반복됩니다.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는 그의 저서에서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뿐 아니라, 종신 교수직을 얻은 대학교수들의 사례도 소개합니다. 종신 교수직은 미국 학계에서 거의 평생의 목표로 여겨지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종신 교수직을 받은 교수들을 추적 조사한 결과, 그 지위를 얻기 전과 몇 년 후의 삶의 만족도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토록 갈망하던 목표를 이뤘음에도, 행복의 기준선은 결국 원래 자리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반대의 사례도 있습니다. 심각한 화상을 입거나 신체 일부를 잃은 사람들을 추적한 여러 연구에서도, 사고 직후에는 절망적인 감정 상태를 보이지만 1~2년 안에 상당 부분 회복되어, 사고를 겪지 않은 대조군과 비슷한 수준의 삶의 만족도를 보고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모든 상실이 이렇게 회복되는 것은 아니며, 특히 소음 공해나 만성 통증, 극심한 빈곤처럼 계속해서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오는 문제들은 적응이 더디거나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도 후속 연구들이 밝혀냈습니다.

적응이 빠른 것과 느린 것

모든 경험이 똑같은 속도로 적응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것에는 빠르게 익숙해지고, 어떤 것에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이 차이를 아는 것이 실제 삶에서 매우 유용합니다.

구분적응 속도대표적인 예이유
물질적 소유매우 빠름새 차, 새 스마트폰, 명품 가방매일 같은 자극을 주고, 예측 가능해짐
지위와 성취빠름승진, 학위, 시험 합격목표 달성 순간 이후엔 ‘새로운 기준선’이 됨
반복되지 않는 경험느림여행, 콘서트, 특별한 식사매번 다른 자극이라 예측 오류가 새로 발생
인간관계·소속감느림좋은 친구, 배우자와의 유대관계는 계속 새로운 상호작용을 만들어냄
만성적 스트레스 요인매우 느리거나 거의 없음소음, 통근 스트레스, 만성 통증자극이 끊이지 않고 계속 새롭게 인지됨

이 표가 말해주는 것은 단순합니다. 물건을 사는 데 쓰는 돈은 빠르게 행복을 소진시키지만, 경험과 관계에 쓰는 시간과 돈은 상대적으로 오래갑니다. 이것이 바로 많은 행복 연구자들이 “물건보다 경험을 사라”고 조언하는 근거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

쾌락의 쳇바퀴 이론을 알게 되면, 우리는 소비와 목표 설정의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첫째, 큰 목표를 이루는 순간만을 바라보고 사는 삶은 결국 허무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목표를 이루는 그 순간의 기쁨은 짧고, 곧 새로운 기준선에 적응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행복 연구자들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오는 몰입과 성장의 즐거움에 주목하라고 말합니다.

둘째, 소비의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큰 것을 한 번에 사는 것보다, 작은 즐거움을 여러 번 나누어 경험하는 것이 총 행복량을 늘린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매일 아침 마시는 좋은 커피 한 잔이, 1년에 한 번 가는 화려한 여행보다 누적된 행복감에서는 더 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셋째, 감사와 새로움이 적응을 늦추는 열쇠입니다. 이미 가진 것을 새삼 다시 느끼려는 의도적인 노력, 즉 감사 일기나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연습은 쾌락 적응의 속도를 늦추는 효과가 있다고 여러 긍정심리학 연구에서 보고되었습니다. 우리 뇌가 익숙함에 적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의도적으로 낯섦을 다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핵심 정리

  •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우리를 계속 움직이게 만드는 진화적 장치에 가깝습니다.
  • 도파민은 쾌락 자체보다 ‘예상을 뛰어넘는 좋은 일’에 반응하며, 예측 가능해진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습니다.
  • 사람은 좋은 일과 나쁜 일 모두에 적응하여 결국 자신만의 행복 기준선으로 돌아갑니다.
  • 물질적 소유에는 빠르게 적응하지만, 경험과 관계, 성장에는 상대적으로 천천히 적응합니다.
  • 감사와 의도적인 새로움 만들기는 쾌락 적응의 속도를 늦추는 실질적인 방법입니다.

오늘의 한 문장

행복은 붙잡아두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롭게 발견해내는 것이다.

FAQ

Q1. 행복의 기준선(해피니스 셋포인트)은 정말 유전으로 정해져 있나요? 많은 쌍둥이 연구에서 행복 수준에 유전적 요인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이는 절대적인 상한선이 아니라 하나의 ‘경향성’에 가깝습니다. 생활 습관과 사고방식, 인간관계에 따라 기준선 자체도 서서히 변화할 수 있다는 후속 연구들도 존재합니다.

Q2. 그럼 돈을 많이 벌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추가적인 소득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점점 줄어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돈 자체가 아니라,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입니다.

Q3. 쾌락의 쳇바퀴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나요?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지만, 속도를 늦출 수는 있습니다. 물건보다 경험에 투자하고, 감사하는 습관을 들이며, 일상에 작은 변화와 새로움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Q4. 나쁜 일에도 정말 적응이 되나요? 많은 연구에서 큰 상실이나 사고 이후에도 시간이 지나면 상당 부분 정서적으로 회복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다만 소음이나 만성 통증처럼 지속적으로 새로운 자극을 주는 문제는 적응이 더디거나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Q5. 도파민과 행복은 같은 것인가요? 같지 않습니다. 도파민은 쾌락 그 자체보다 ‘기대와 예측’, 그리고 그 예측이 어긋났을 때의 반응과 더 관련이 깊습니다. 행복은 도파민 외에도 세로토닌, 옥시토신 등 다양한 신경화학적 요인과 심리적, 사회적 요인이 함께 작용하는 훨씬 복잡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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